이혼하기로 해놓고 무슨 이유에선지 마음이 바뀌어 짝꿍에게 매달렸던 것도 같다. 아니, 차마 말은 못하고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스러워 심란해하다가 잠에서 깼던가? 일어나서 옆옆자리에 누워있는 그가 눈을 뜨자, 꿈 이야기를 했다. "우리 어제 그런 얘기했잖아. 연예인 이혼 얘기... " "아 맞다, 그랬지" 이혼한 여성 연예인들의 육아를 다룬 TV 프로그램 이야기를 어제 잠깐 나눴던게 생각났다. 같이 살다가 이게 아니다 싶으면 이혼할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지금까지는 그렇지 않았다. 꿈이라서 다행인 꿈이었다.
38주0일 첫 내진에서 이미 자궁이 3cm 열려있었고 39주3일에 이슬이 비쳤다. 이제 정말 출산이 임박했구나 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시간은 별일없이 흘러갔다. 오전9시경 : 진통 시작 3일 후인 39주 6일 일요일 아침. 여느 때처럼 좀 일찍 눈을 떠 이런저런 일을 하고 있었는데 오전 9시쯤부터 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했다. 약한 생리통 정도였다. 주기를 재보았는데 약간 들쑥날쑥하긴 했지만 10분 안쪽이었다. 짝꿍을 깨워 곧 병원에 가야될 것 같다고 이야기하고, 같이 집을 대충 치우고 출산가방을 점검했다. 그리고는 진통주기가 5~7분 정도이던 11시반쯤 병원 분만실에 연락하고 12시가 거의 다 됐을 무렵 드디어 출발! 일요일 낮이라 강변북로가 좀 막힐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다. 1..
난데없는 조기진통으로 2주 가까이 입원했던터라 열매가 너무 일찍 나올까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나는 아직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이리저리 잘 다니고 있다. 며칠전부터 일부러 많이 걸어다녔더니 밤에 자려고 누우면 치골이 쑤시긴하지만. 그리고 운 좋게도 임신기간 내내 허리통증이 없었는데 이제 막달에 접어들고 나니 슬슬 통증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씩 허리에 부담이 느껴진다. 이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통증이 되겠구나 싶은. 하지만 이제 그야말로 막바지니까 그리 걱정되진 않는다. 며칠전부터는 아침에 일어나면 부어있다. 지금까지 거의 부은 적이 없었는데 역시나 막판이 되니.. 36주 첫날 퇴원한 후로 1주 간격으로 병원에 가다가 이번주부터는 3일 간격으로 간다. 담당 교수님 외래가 있는 월, 목요일에 맞춰 가는 것. 3..
막달이 될수록 공간이 좁아져 태동이 줄어든다고 하는데 열매는 오히려 더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 같다. 무슨 생각으로, 어떤 의도를 가지고 몸을 자꾸 움직이는 걸까. 답답해서? 얼른 엄마 몸의 좁은 공간을 벗어나고 싶어서인가? 뭐 특별한 의미없는 몸짓인지도 모른다. 생명이 있는, 살아있는 존재니까 당연하게도 움직이는 건지도.. 16~17주경 첫 태동을 느꼈을 때 얼마나 안도했던가. 첫 임신 때는 20주가 넘도록 태동을 느끼지 못했지만 그래도 아이가 잘못됐을거라고는 생각 못했었다. 개인차가 있다고 하니, 그저 우리 아이는 좀 늦는 것 뿐일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늦된 아이라서 그랬던게 아니라는 걸 알게됐을 때, 얼마나 절망했는지, 슬펐는지. 이번 임신 때 첫 태동 전까지는 늘 불안 속에서 지내다가 태동을..
나와 짝꿍, 우리는 각자 다른 가족의 구성원이었던, 이른바 '남'이었다. 그런 두 사람이 만나 새로운 가정을 이뤘다. 가족이 됐다. 그런 부부가 아이를 낳는다는 건 생각해보면 참 신기한 사건이다. 그 아이는 엄마 아빠처럼 다른 가족에 속해있던 적도 없고 이미 세상 어딘가에 존재했던 사람도 아니다. 이 세상에 없던, 부부의 유전자를 절반씩 나눠 가진 전혀 새로운 존재가 내 뱃속에 있다. 작은 세포에서 시작해 지금은 인간이 되어 세상에 나올 날을 기다리는 중이다. 이거 너무 신기한 일이잖아?! 머지않아 그 아이를 만난다는 것이 아직 실감이 안 난다. 평생 잊지 못할 기쁜 날이 되기를. :)
아주 촘촘한 기록은 아니더라도 한달에 한번 정도는 내 몸과 마음의 상태를 글로 남기려고 했는데 26주 이후 훌쩍 10주나 지났다. 그리고 오늘은 조기진통으로 12일간의 입원 생활을 마치고 퇴원한 다음날이다. 26주 무렵 조금씩 골반통이 있었는데 그 후 점점 더 심해져서 2-3주 동안은 걸을 때도 아프고 자세를 바꿀 때 상당히 아팠다. 임신 중 나타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증상이라는 것을 머리로 확인했음에도 설마 이 증상이 다른 의미(아이에게 부정적인 영향이 있다든가)가 있는건 아닐까 하는 근거없는 불안감이 가끔씩 솟아나기도 했다. 다행히 30주 접어들면서 신기하게도 호전됐다. (34-35주부터 다시 아프지만.. ㅠㅠ) 그래서 그런지 30주 이후에 이곳저곳 부지런히 다녔다. 물론 날씨가 따뜻해지기도 했고. ..
오래된 사진 속, 세살쯤 됐을까, 샛노란색 스웨터를 입은 내가 웃고 있다. 또 어떤 사진에는 돌쯤 되어보이는 내가 청록색 조끼를 입고 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다. 엄마가 떠 주신 옷이다. 한 달 가까이 중단했던 아기옷을 다시 뜨고 있다. 다홍색 멜빵 블루머를 입은 아이를 상상해본다. 이 옷을 입고 돌 사진을 찍게 될지도 모른다.우리 동네의 벚꽃 길을, 단풍나무 아래를 함께 걸을수도 있겠지. 나보다 훨씬 젊었던 우리 엄마도 이런 상상을 하며 스웨터를, 조끼를 떴을까. 슬픈 생각이 아닌데도 그냥 눈물이 나온다. 아이를 키우면서 이런 순간들을 얼마나 숱하게 맞으려나.
이제 26주차. 출산예정일까지 남은 일수는 두자릿수가 되었다. 그 사이 21주차에는 정밀초음파도 했고, 23주에는 3박4일간 제주에 다녀왔으며, 오늘은 임당선별검사를 하고 왔다.원래 입체초음파도 보기로 했지만 태반 쪽에 얼굴을 가까이 붙이고 있어서 보지 못했다. 15분쯤 이리저리 걸어다니고 계단도 오르내려 아이가 자세를 바꾸길 기대했지만 결국 얼굴을 살짝 돌리기만 한 상태라 포기. 이런 자세로 있는 아이의 경우는 다음에 다시 시도해도 못보는 경우가 많다고 하길래 바로 쿨하게 안보기로 했다. 아이 얼굴은 석달 후에 보는 걸로.^^ 21주차 몸무게가 430g인가 그랬던것 같은데 오늘은 무려 960g! 한달새 두배 이상 몸무게가 는 열매.배둘레는 21cm였고.. 초음파로 배둘레 잴 때마다, 그 수치만큼 내 두..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전작들에 비해 평이 그리 좋지 않다. 아마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는 구조라서 그런 것 같다. 그런 구조 때문에 지루한 감이 없잖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꽤 인상깊게 보았다. 영화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겪으며 주인공인 4살 아이 쿤이 결국 한단계 성장하는데성장영화/소설을 좋아하는 내 취향과도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보다 세살 어린 바로 아래 동생과 나는 개월수로는 45개월 차이가 난다. 외동딸로 살던 시절의 기억은 전혀 없다. 오래된 사진을 보고 이런 일이 있었구나, 내가 이런 곳에 갔었구나, 하고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갓난아기이던 동생을 처음 만난 순간만은 생생하게 기억한다. 아마 내가 기억하는 나의 어린 시절 중 가장 오래된 장면일테고, 가장 강력한 순..
19주다. 분명 아이는 잘 크고 있다는 걸 알고 있고, 안정기에 접어들었으니 이젠 좀 안심해도 될까 싶다가도,유산했던 시기가 다가와서 그런지 가만히 있다 문득 불안감에 휩싸이곤 한다. 또 유산되면 어떡하지? 정밀초음파 보러 갔는데 아이 심장이 또 멈춰있으면 어떡하지?이런 생각에 순간 빠져들고 마는 때가 있다.이틀전엔가는 갑자기 불안해져서 남편을 껴안고 울기도했다. 다시 한번 그 일을 겪는다면 저번보다는 덜 충격적이겠지만 그래도 많이 힘들것 같다. 뱃속에 몇달 품고 있던 얼굴 못 본 아이를 한번 떠나보낸 것도 이렇게나 힘든 걸 보면, 시기가 언제든 자녀가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등지는 것을 왜 가장 큰 불효라고 하는지 감히 알 것 같다. 얼마전 강원도 펜션에서 사망한 고등학생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숨진 김용..
16주차. 어느덧, 내일이면 17주차에 들어선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작년에도 17주차쯤 컨디션이 안정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올해도 비슷한것 같다. 어제는 하루종일 헛구역질 단 두 번. 샤워하는 동안.이전보다 덜 피곤하고 꽤 다닐만해졌다. 이제 서서히 운동량을 늘려도 좋을 것 같은데 이젠 날씨가 제법 추워지고 얼마전 눈이 온 이후엔 더러 미끄러운 길도 생기고 해서 조심해야할것 같다. 길을 걸을 떈 평소보다 좀 더 신경써서 걷고 있다. 아침에 바램보다 일찍 깨는건 여전하고 대신 낮잠을 1-2시간 정도 잔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그냥 '똥배' 많이 나온 것처럼 보이던 배가 지난 1주일만에 갑자기 눈에 띄게 훅 나온 느낌이 든다. 신기하다. 보통 둘째 임신 때는 배가 더 빨리 나온다고 하는데, 첫 아이이긴하지..
지난주에 짝꿍이 준 크리스마스 카드. 올해 처음 받은 카드다.약 1cm 두께의 육각형 모양인데 윗부분을 당기면 트리 모양이 되고,트리 바닥에 글 쓰는 공간이 있다. 회사 디자인팀에서 만들었다고 한다. 받자마자 읽었을 땐, 내년엔 셋이서 3배 더 행복해지자는 말에 웃음이 나왔다. 끝 부분에 써놓은 -이것은 테스트입니다-라는 말에 다시 한번 큭큭. 그의 엉뚱한 유머가 좋다. 근데 오늘 문득, 3배 더 행복해지자는 말이 다시 생각났는데, 왠지 눈물이 나왔다. 정말 셋이서 3배 행복해진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혹시나, 다시 둘이 되더라도 우린 행복할거야, 라고 생각했다.
최근 3년만에 화장대 서랍을 정리했다. 3단 서랍장의 첫번째 서랍을 화장대 서랍으로 쓴다. 일반적인 화장대 서랍장 치고는 꽤 큰 편인데, 싹 다 비우고 버릴 물건을 추려내니 꽤 큼지막한 비닐봉지 한개 2/3 정도가 찼다. 안 쓰면서 버리지 않던 물건이 그만큼 많았던 것. 물건을 버릴지 말지 여러번 결정하면서 새삼 다시 생각하게된 몇가지. 1. 이제 자잘한 악세서리에 대한 취향은 희미해졌다. - 여행지에서 샀던 것이나 여전히 종종 즐겨쓰는 것들은 남겨뒀지만 그저 '예뻐서' 샀던 몇가지를 버렸다. 2. 무료로 준다고 해서 무조건 받지 말자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 대표적인 아이템은, 화장품 샘플. 그리고 무료 사은품 같은거. 물론 최근에는 거의 받지 않았다. 무료로 준다고 해도 내가 쓸것 같지 않은 물건은..
지난주쯤부터는 전반적인 컨디션이 한결 나아졌다고 느낀다. 구역질 횟수도 줄었다. 아직 양치, 샤워할 때는 우웩우웩 거리면서 하지만. 멀미하는 것 같은 느낌은 길지 않게 하루에 한두번 정도.다행히 식욕은 원래보다 살짝 떨어진 상태를 유지 중이다. 예정된 검진일까지는 열흘 정도 남았지만 처방약이 다 떨어져서, 아이가 잘 있는지도 확인할겸15주3일째 되던 날 병원에 다녀왔다. 열매는 꼬물꼬물 잘 움직이고, 심장도 잘 뛰었다. CRL 10cm, HR 160.초음파 화면엔 원래 예정일보다 3일정도 이른 날짜가 떴다. 그 정도야 그닥 의미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주수에 맞게 잘 크고 있다니 다행이다. 사실 지난번엔 아이가 주수에 비해 1주 정도 작았다. 그 정도 작다고 다 유산되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취약할..
9주차 중반부터 불안과 걱정이 계속되다가, 월요일엔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시간이 흘러 못갔고 화요일엔 담당선생님 휴진이었고, 결국 수요일에 무작정 병원에 갔다. 접수데스크 직원이 거의 1시간 가까이 대기해야될수도 있다고 말해줬다. 어차피 예약도 하지 않았고 한창 바쁠 시간대인것 같아 예상하고 있었다. 진료실 앞에서 정말 50분 정도 기다렸다. 책 읽느라 생각보다 시간은 빨리 갔지만. 진료실에 들어가 선생님과 잠깐 얘기를 나누고 초음파를 봤다. 아이는 내 걱정이 무색하게 팔다리를 꼬물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지난번보다 자라 키는 두 배가 되었고 심장도 170여회로 잘 뛰고 있었다. 쿵쾅쿵쾅.. 아이의 심장소리를 듣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선생님이 휴지를 건네주셨는데,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
9주차 들어서면서 이틀 정도 컨디션이 괜찮나 싶더니만 어제부터 오히려 헛구역질 횟수가 늘었다. 그래봤자 하루에 10번쯤이지만, 원랜 저녁 이후에만 몇번 우웩우웩거렸는데-_- 어제 오늘은 아침에도, 낮에 길을 걷다가도, 이 글을 쓰려고 앉기 불과 몇분전까지도 헛구역질을 몇번 했고 심지어 정말 뭔가 속에서 넘어올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기까지 했다. 물론 심한 입덧 때문에 먹을 수 있는게 거의 없다거나, 비누나 샴푸 냄새 때문에 씻을수 없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그에 비하면 훨씬 운이 좋은 편이지만. 입덧이 있다는건 아이가 건강히 잘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는데,지속적으로 헛구역질이 나옴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평소와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배가 쿡쿡 쑤시고, 안에서 당기는 느낌이 나고.. 이른바 ..
지난 주말에 어머니댁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한달에 한두번은 가서 밥을 먹는데, 임신 소식을 전한 후로는 처음이었다. 원래 자식 걱정과 잔소리가 많은 분이지만 첫 임신땐 조심하고 잘 챙겨먹으라는 말씀 뿐이었는데 한번 유산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이번엔...-_- 앉자마자 그리고 밥을 먹는 동안에도 이래라 저래라 말씀이 많으셨다. 누구보다 걱정되고 불안한 사람은 나 자신인데, 라고 생각하면서 네 네 하며 묵묵히 듣고 있었다. 그러다 어머니가 병원 가까운데로 옮겼으면 좋겠다고, 구체적인 병원 이름까지 언급하시자,나도 모르게 정색을 하며 "어머니, 그건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라고 말해버렸다. 정말 나도 모르게, 순식간에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_- 병원 옮기라는 말씀은 충분히 하실만한 말씀이었지만 그 전까지..
탁월한 필력으로 이름이 알려진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어제 실검에 올랐다. 그의 책을 읽어본 적은 없지만 칼럼이나 SNS를 통해 종종 접해왔고 막연한 호감을 갖고 있었다. 의사들 중 누군가가 어떤 방식으로든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의사들의 경험을 전달해 오해를 풀고 공감과 이해를 끌어내는 것이 다른 의료인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도 있고. 최근 있었던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피해자의 담당의였던 그가 당시 환자를 치료했던 상황에 대해 아주 상세히 SNS에 올린 글을 읽었다. 상태가 심각했던 환자를 볼 때 느꼈던 당혹감과 분노와 함께. 그런데 그 설명이라는 것이 너무나 구체적이었다. 물론 문장력은 뛰어난 글이었다. 하지만 이내 불편함을 느꼈다. 이건 좀 아니다, 이러면 안되는거다 하는, 직감에 가까운...
임신테스트기의 선명한 두 줄을 확인한지 한달이 지났다. 오늘 두번째 병원진료를 다녀왔다. 첫임신 때는 이무렵 조금 피곤하고 소화가 잘 안되는 느낌이 든 것을 제외하면 입덧이 거의 없는 매우 운좋은 임산부였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았는데 이번엔 아니었다. 10월초, 지인 결혼식에 다녀온 날, 오후부터 기운이 없어서 오랜 시간 누워있었고 조금이라도 공복감을 느끼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밤마다 불면에 시달리는 가장 큰 이유는 울렁거림이다. 이번주부턴 누워있는 시간이 꽤 줄었지만, 이따금씩 헛구역질하는 내 모습은 정말 생경하다. 컨디션이 조금 나아지니 이번엔 아이가 잘못된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치솟았다. 3일전부터는 아랫배가 당기거나, 쿡쿡 쑤시는 느낌이 들곤했는데 자궁이 커지면서 느낄 수 있는 증상이라는..
따라서 우리는 존엄하고, 아름다우며, 사랑하고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인 것이다. 누구도 우리를 실격시키지 못한다. p.313 이 책의 본문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제목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이란 결국 ‘모든’ 사람은 존엄한 존재라는 (지극히 당연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한) 명제를 차근차근 독자에게 설득해나간 것이라고 볼 수 있다.제목의 ‘실격당한 자들’이란 장애인을 뜻한다. 저자는 골형성부전증으로 휠체어에 의지해 움직이는 1급 지체장애인이면서 서울대 로스쿨을 졸업한 변호사이다. 하지만 이 책은 사회적으로 흔히 장애인에게 기대 또는 요구되는(?) ‘장애를 극복해낸 눈물겨운 이야기’가 아니다. 책을 읽으며 저자의 높은 지적 수준에 감탄했지만 그것만이 전부였다면 이 ‘변론’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었..
전 남친과 헤어진 후 울고불고 했던 며칠이 지나고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전공의 4년차가 되면서 약간 여유가 생겼으니 아침 6시반에 시작하는 주 5일 영어회화 수업도 신청했다.마침 3월 초쯤 친구가 내게 소개팅을 제안했다. 소개팅으로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는 것에 대해 이미 깊은 회의를 갖고 있었지만 하겠다고 했다. 역시 환기 차원에서. 얼마 안되어 얼굴도 모르는 소개팅남이 카톡으로 말을 걸어왔다. 그 때 약속을 잡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그러다가 영어회화 수업을 다니기 시작한지 딱 2주가 지나고,정말 잠을 전혀 잘 수 없을 정도로 밤새 기침을 계속 해대고 열이 오르더니만, 호흡기내과 외래에 가서 찍은 흉부엑스레이엔 좌하엽 폐렴이..젊고 기저질환 없는 ..
작년 초에 2주에 책 한권 이상 읽기로 한 약속을 거의 지켰다. 1월,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3~5월을 제외하고.2017년은 책읽기의 재미를 다시 찾은 해였다. 돌이켜보면, 2016년 말에 선물받아 읽었던 가 너무 좋았는데 (별점 5개!)그게 시작이었다. 다른 좋은 책을 더 많이 읽고 싶어졌다. 작년 한해 읽었던 책을 다시 떠올리며 결산해본다.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으로 별점도 매겨봤다.내가 그 책을 다시 읽고 싶은지,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지 두가지를 스스로 물어보아 별점을 매겼다. (5개 만점)다시 읽고 싶거나 추천하고 싶은 이유가 재미일수도 있고, 가치나 의미일수도 있다. 별점이 꽤 후한 편인데,지루하거나 재미없는 책, 잘 읽혀지지 않는 책은 읽다말았고, 그런 책은 아래 목록에 넣지 않았기 때..
위태롭고 불안한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해야할 것 같다. 이 책을 쓴 저자는 결국 그 굴레에서 벗어나 놀라운 성공(최소한 지금까지는)을 이뤄낸 사람이지만 자신의 성공을 내세우지 않는다.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내는 방식으로 힐빌리들이 처한 상황을 보여주는 한편, 아주 구체적이라고 하긴 어렵지만 변화의 방향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저자가 실제로 살아온 이야기라는 점에서 힘이 있다. 소설이 아닌데도, 소설처럼 이야기에 빠져들어 읽었던 건 그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직접 경험하지 못하는 세계를 책을 통해 넓혀간다는것이 책읽기의 의미 중 하나일텐데, 그런 취지에 잘 맞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미국 사회의 다른 면을 볼수있기도.
의대 졸업 후 레지던트 수련과정에 들어가지 않고 미국으로 역학(epidemiology) 공부하러 간 김승섭이라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를 몇년전 들었다. 흔치 않은 이력이다. 그때부터 김승섭선생님이 어떤 연구를 하시는지 늘 눈여겨봤었다. 정말 필요하고 의미있는 연구를 하신다고 생각했다. 타인에 대한 공감과 용기가 필요한 연구들. 논문 몇편을 읽었고, 언론매체나 SNS에서 글도 읽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이 나왔을땐 어차피 대충 아는 내용일것 같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별로 안들었다. 근데 이 책이 지난 연말에 이래저래 화제가 되는걸보고 적잖이 놀랐다. 여러 일간지에서 올해의 책으로 꼽혔고, 출판인들이 꼽은 올해의 저자로도.. 서평이나 신간소개를 찾아 읽는편인데, 여러 매체(진보/보수 언론 모두)에서 공통으로 ..
지난 가을 해방촌 고요서사에서 산 책, . 딸아이를 키우는 친구에게 보내는 열다섯가지 제안이 담긴 책이다. 내가 아는 페미니즘이란 '성평등을 지향하는것'. 이 책 저자의 이전 책(읽어보진 않았으나) 제목인 라는 주장에 나도 동의한다. 성평등은 성별과 무관한 보편적 가치니까. 그러니 당연히 이 책의 제안들은 딸이든 아들이든 아이를 키우는 모든 부모에게 할수있는 제안들이기도 하고, 부모가 아닌 사람들도 생각해볼만한 내용이다.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쓰인 작은 책이지만, 담겨진 제안 하나하나가 단단한 의미를 갖는다. 두고두고 다시 읽어보면 좋을것 같다. 치잘룸이 이런 남자들에게 의구심을 갖도록 가르쳐. 여성이 자신과 동등한 인간이라고 생각할 때가 아니라 자기 가족이라고 생각할 때만 공감할 수 있는 남자들. 강간..
나는 줄곧 그렇게 생각했다. 헤어지고 나서도 다시 웃으며 볼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끝이 어떠했든 추억만으로도 웃음지을 수 있는 사이가 있는 한편, 어떤 헤어짐은 긴 시간이 지나도 돌아보고 싶지 않은 상심으로 남는다고. - p.90 씬짜오, 씬짜오 "5월의 광주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우리가 사는 사회가 얼마나 병들었는지 대학에 와서야 토론할 수 있게 된 스물, 스물하나의 아이들이 그게 너무 아프고 괴로워 노래를 불렀어. 어떤 선배들은 노래가 교육의 도구이자 의식화의 수단이라고 했지만, 나는 우리 노래가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었다고 생각해. 나만은 어둠을 따라 살지 말자는 다짐. 함께 노래 부를 수 있는 행복. 그것만으로 충분했다고 생각해. 나는 우리가 부르는 노래가 조회시간에 태극기 앞에서 부르는 애국..
갖고 있으나 쓰지 않거나 앞으로도 오랫동안 쓰지 않을 물건 세가지를 이번주에 중고나라를 통해 남에게 팔았다. 게다가 세가지 모두 게시물 올리고 하루만에 다 팔렸다.적당한 가격으로 내놨는데 금세 원하는 사람이 나타나 딱 팔렸을 때 은근 쾌감이 있더라는. 그렇게 해서 이번주에 6만5천원의 기타 수입이...ㅎㅎ 1-2년전쯤부터는 별 쓸모없이 갖고 있는 물건들을 적극적으로 처분하고 있다.새것, 혹은 새것에 가까운 물건들은 중고나라에 내놓아 팔거나 아름다운가게에 기증했다.팔수도 없고, 기증하기도 어려운 물건들은 과감하게 버렸다. (그래도 아직 꽤 남아있는 것들이 있다. ㅠㅠ)아, 유일하게 갖고 싶어하던 지인에게 선물한 것도 있다. 2년 가까이 쓰지 않던 에어프라이어, 중고로 팔까 하다가. 대신 새로운 물건을 들일..
“아이가 잘못된 것 같네요…”지난여름, 임신 21주 차에 접어들던 어느 날이었다. 아이가 얼마나 자랐을까 기대하며 초음파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달 전 쉴 새 없이 움직이던 아이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화면을 보자마자 어떤 상황인지 단번에 알아챘지만, 임신을 종결해야 한다는 담당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너무나 뜻밖의 일이었다. 입원 준비를 하러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야 울음이 터져 나왔다. 예정일 무렵의 진통은 곧 아이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과 기쁨으로 얼마든지 견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예상대로라면 넉 달 후에나 겪게 될 일이었다. 만삭 때만큼 아프진 않을 거라고 들었지만, 그래도 이미 심장이 멈춰버린 아이를 보내기 위해 진통을 겪어야 하다니 무..
* 영화의 결정적 내용이 상당 부분 포함되어있습니다. 어느 인터뷰에서, 자극적인 요소 없이도 재미있고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이 기억에 남았다. 평소 즐겨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영화 소개 코너에서 ‘동어 반복과 자기복제’가 난무하는 요즘의 한국 영화계에서 반가운 영화라고 소개되기도 했다. 게다가 알고 보니 작년에 참 재밌게 보았던 영화 ‘우리들’을 만든 영화사의 작품이었던 것.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개봉 후 3일째 영화관에 갔다. 영화 ‘용순’은 여고생 용순의 2학년 여름을 담고 있다. 충청도의 어느 고등학교에 다니는 용순이 육상부에 들어가 육상대회 준비를 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용순은 육상부 담당인 젊은 체육 교사를 좋아하게 되고, 선생님과 비밀..
2-3주전부터는 제법 임산부 테가 나기 시작했다. 지난주는 임신 21주차였다. 한달만에 산부인과 진료를 받으러 가던 날. 진료 전에 정밀 초음파 검사가 예약되어있었다. 여느 때처럼 초음파실 베드에 누워 남편과 함께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초음파를 보던 테크니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화면에 보이는 아이는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심장도 뛰지 않았다. 당황한듯한 테크니션은 밖으로 나가더니 다른 직원을 불러왔다. 20주 안팎이면 태동을 느끼기 시작할 시기다. 아직 태동이 없어서 혹시 무슨 문제가 생긴것은 아닌가 조금 걱정되긴 했지만 태동을 느끼는 시기는 개인차가 있어서 괜한 걱정이려니 했다. 하지만 태동이 없었던 건 아이가 정말 움직이지 않아서, 살아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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