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아이에게 읽어줄 첫 동화책으로 을 샀다. 어젯밤, 짝꿍이 내 다리를 주물러주는 동안 나는 드디어 을 새싹이에게 소리내어 읽어주었다. (잘 듣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 초등교사이자 두 아이 엄마인 친구가 '강아지똥 읽을 때마다 눈물이 난다'라고 하길래, 나는 '뭐 그 정도까지는...'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강아지똥이 민들레를 와락 껴안는 장면에서 그만.. 눈물이 나 소리내어 읽기를 잠시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얼굴에 마스크팩을 붙인 채 누워서 울먹이는 나를 보며 짝꿍은 빵 터지고..ㅎㅎ
오늘은 12주차 마지막날. 이제 13주차에 접어든다. 병원에 다녀왔다.새싹이의 모습을 좀 더 뚜렷하게 볼 수 있었다. 5주전엔 움직이는지 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젤리곰 모양일 뿐이었는데오늘은 머리와 몸, 팔과 다리, 귀가 보였고무엇보다도 몸을 조금씩 움직이고 있어서 신기했다.키도 5주사이 4배 정도 자라 6cm 정도. 상상해보면 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으면 딱 좋은 사이즈인데;그 쪼그만 녀석 머리엔 이미 뇌실 구조도 보이고, 처음 심장 소리를 듣던 날 그냥 반짝거리는 점일 뿐이던 심장은 (정확히 2심방 2심실인지는 보이지 않았으나) 격벽이 생겨 제법 사람 심장 같아 보였다. 이제 제법 '작은 사람' 같은 새싹이를 보니, 어서 보고싶다는 생각이 든다. 눈이 크고 코도 오똑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
오늘이 10주차 마지막날. 내일부터 11주차에 접어든다. 자궁이 방광을 압박하고 있어서 여전히 자주 소변이 마렵다. 서서히 자궁이 골반 위로 올라가면서 이런 증상은 줄어든다고 하는데 여전히 새벽에 요의를 느껴 잠에서 깨는 날이 많다. 그렇지 않아도 저번 진료 때 소변에서 백혈구가 좀 나와서 항생제를 며칠 먹었는데, 평소에 소변을 잘 참는 편이라;; 세균뇨가 생기지 않을까 조금 걱정된다. 평소보다 음식 냄새에 약간 민감해졌다는 것 말고는 입덧이 거의 없어서 잘 먹고 있는데, 소화 기능이 너무 떨어졌다. 과식 후 포만감 정도가 아니라 정말 살짝 배부른 정도로 밥을 먹기만 해도 속이 더부룩해서 어쩔 줄 모르겠다. 그러면서 또 시간 지나면 배가 고프니까 또 밥을 먹고.. 그러면 또 더부룩해서 미칠것 같고..-_..
토요일. 시댁에 가서 점심을 먹으며 어머니께 임신 사실을 말씀드렸다. 역시, 예상했던대로 물개박수 치시며 좋아하셨다. ㅋㅋ 점심을 먹고, 천천히 걸어 돌아오다가 커피와 케잌이 땡겨 카페에 앉았다. 벚꽃이 활짝 피었다. 탈 없이 아이가 자라 태어난다면, 아마 내년 이맘때쯤 아이와 함께 벚꽃을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 모습을 상상하니, 그렇게 나와 남편의 인생에 새로운 풍경이 펼쳐질 거라는 사실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 때 바라보는 벚꽃은 지금 바라보는 벚꽃과는 다르겠지. 이런 말을 하니 남편도 뭔가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 벚꽃 구경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씨지만, 실은 오늘 미세먼지 농도가 꽤 높다. '보통' 수준이지만 실은 '나쁨' 기준에 가까운 보통 수준이다. 우리 집에서 보이는 ..
광화문 촛불집회 같은, 인파로 가득찬 광장에서였다.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외국인들도 상당히 많았고.. 남편과 광장에 있었지만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어느 순간 무대 가까운 쪽에 폭탄이 터졌는지, 불이 났는지 사람들이 무대 반대방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나도 달려가며 남편에게 메세지를 보냈지만 답이 없었다. 그래서 전화를 했는데 전화기가 꺼져있다. 한두번 더 했는데 계속 꺼져있었다. 멘붕 상태가 되어 미친 사람처럼 남편을 찾아 헤맸다. 눈을 떴다. 남편이 옆에서 곤히 자고 있다. 몸을 돌려 그의 허리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만우절 다음날 아침.
박 탄핵 선고가 있던 날 아침이었다. 생리예정일 이틀 전에 해본 임신테스트기엔 아니라고 나왔지만 확인 차원에서 한번 더 해봤다. 임신테스트기의 선명한 두 줄이 보였다. 적극적인 노력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벌써 성공(?)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못했다. 어렴풋이 올해 상반기에는 성공했으면 좋겠다고 바랬었는데.. 비몽사몽이던 남편을 깨워 테스트기를 보여주고, 다시 욕실에 가서 거울 앞에 섰다. 나도 모르게 거울 속의 내 얼굴을 바라보며 혼자 활짝 웃었다. 분명 기쁜 마음이었는데, 뭔가 다른 감정이 동시에 존재했지만 어떤건지 알수 없었다. 기분이 묘했다. 마지막 생리일 기준으로 그 때가 4주차였는데 어차피 병원에 가봤자 확인할 수 있는게 별로 없을 것 같아 열흘 후 병원에 갔더니, 주치의 선생님이 더 기뻐해주셨..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삶을 경주로만 봅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레이스가 시작되죠. 요즘은 더 빨리 시작된다고 합니다만, 어쨌든 초등학교 때부터 선행학습을 합니다. 그리고 명문 중학교에 가야 하죠. 거기 갈 때가지 행복을 유보해요. 명문 중학교에 가서 3일 정도 좋아하다가 다음부터 다시 행복을 유보하고 특목고를 향해 달립니다. 특목고에 들어가면 또 서울대에 가기 위해 다시 행복을 유보해요. 서울대에 가면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부장이 되기 위해, 임원이 되기 위해, 아파트 평수를 늘리기 위해 행복을 유보해요. 그러고 나면 나이 60, 70이 되죠. 지금 이 순간, 현재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행복은 삶이 끝나갈 때쯤에나 찾게 될 겁니다. 순간에 의미를 부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의미..
올해 내 생일은 설 연휴 시작 전날이었다. 어쩌다보니 짝꿍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휴가를 쓰게 됐고, 나도 생일이니 같이 시간을 보낼 겸, 휴가를 썼다. 이제 겨우 서로의 생일을 챙겨준 것이 고작 세번인데도, 며칠전 서로의 생일에 무엇을 선물했는지 꼽아보니 생각나지 않는게 있어서 좀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기록해두기로 했다. 앞으로 수십년을 함께 살아갈텐데 매년 생일에 무얼 선물했는지, 뭘 했는지 다 기억할 수는 없을 것이다. 특별히 기억에 남을 생일날도 있을 거고 여느날과 다름없이 보내는 생일도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둘다 물질적인 것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편이라 (물론 나의 경우에는 다른 여자들에 비해 그런 편이라고 생각한다 ㅋㅋ) 거창한 선물을 바라지는 않는다. 마음을 전할 수..
3년 전인가, 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다. 어쩌다 보니 마무리 단계 작업이 내게 몰렸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분명히 나 혼자 하기에는 벅찬 작업이었다. 결국 그 일은 내게 떨어졌고 혼자서 마무리를 감당했다. 기한이 촉박하게 정해졌던 일이라, 아침에 출근해 새벽 2~3시에 퇴근하는 생활을 며칠간 지속했다. 그 기간 동안, 집에 가서는 정말 최소한의 잠만 자고 다시 출근했다. 생애 처음으로(!) 식욕 저하를 겪으며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지냈다. 몸은 피곤했지만 밤늦게 누워도 쉬이 잠이 오지 않았다. 주말을 포함해 며칠간, 나는 '그 일'을 하는 것 외에는 다른 일을 전혀 할 수 없었다. 그 상황을 피해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도 있었다. 괴로운 나날들이었다. 내 마음을 살필 여유 따..
의전원 졸업반시절 '마음의 평안'을 찾고자 시작한 요가. 의사고시 1주일전까지, 그리고 시험이 끝나고 한달정도 총 1년간 꾸준히 다녔다. 몸과 마음의 균형이 잡힌 느낌, 말그대로 평안을 얻었다. 다니고 있는 독서실 반경 100미터 내에 요가센터가 있다는걸 왜 하필 시험 열흘 전쯤에야 알게된걸까. 시험 4일전인 어제 주저없이 1개월권 등록! :) 비록 아직도 몸은 좀 뻐근하나, 내 몸과 호흡에 집중한 것이 무척 오랜만이라 좋았다. 비록 5~6년전에 배웠던 동작들이지만 내 몸은 기억하고 있는듯해서 조금 으쓱. ㅎㅎ
어제밤, 잠이 오지 않아 끄적였던 글. 여기에 옮겨둔다. 1 많은 사람들이 통합진보당 해산에 대한 반대 의견을 밝힌다. 또 그 중 많은 사람들이 '나는 통합진보당을 지지하지 않지만'이라고 시작한다. 그 이유에 대해, 종북 낙인에 대한 스스로의 검열이라고 분석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보다는, 당 내부의 노선/계파간 갈등과 배타성이 외부로 드러났던 일들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중엔 실제로 그걸 겪은 이들도 있을테고. 나 역시도, 글로 쓰진 않았지만 누군가에게 그런 식으로 의견을 밝힌적이 있어 돌이켜보니, 나는 두가지 모두인것 같다. 낙인이라는게 무섭다는 걸 느끼는 한편(전자), 오랫동안 당적을 지키다가 결국 탈당한 이유는 후자이기도 하다. 2 어쨌건, 나도 헌재의 판결 이후, 허탈감을 느낀다. 누군..
지금이야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는 삶을 살고 있지만, 인턴, 그리고 전공의 1년 차 때는 그야말로 당직을 '밥 먹듯이' 하며 지냈다(물론 4년 내내 당직이 많은 다른 과에 비하면 나은 형편이지만 말이다). 인턴 때는 매달 다른 과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당직일수가 달마다 꽤 차이가 났지만, 전공의 1년 차 전반기 6개월 동안은 일주일 중 22시간을 제외하고 늘 당직이었다. 언제든 병동이나 응급실에서 걸려오는 콜을 받을 준비가 되어있어야 했다. 병동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았고, 병동 간호사들과 업무상 접촉할 일이 많았기 때문에 자연히 가까워졌다. 단순히 인사하고 업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넘어 농담을 주고받거나 사소한 것을 챙겨주기도 하는 간호사들도 있었다. 한동안 안 보이는 간호사가 있으면 무슨 일이 ..
사실 파스타 먹으러가서는 오일 파스타를 즐겨먹는 편이 아닌데며칠전 알리오올리오를 두번째로 만들어봤고, 오늘 아침엔 봉골레 파스타에 도전했다.어제 야심차게 준비해둔 바지락 조개와 화이트와인. 요리를 잘 하는 편은 아니지만 4년 간의 자취 생활 내내 스스로 밥을 해먹고 다녔을 만큼 나는 (보기 보다) 요리를 좋아하는 편이다.다시 부모님과 함께 살게된 후로는 요리를 거의 안하지만생활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주말에 한가지씩 요리를 해보기로 했다. 오일파스타는 만들기는 제일 쉽지만 그만큼 맛깔나게 만들기는 어려운 듯 싶다. 나의 첫번째 봉골레 파스타는 각종 인터넷 블로그를 참조해 이렇게 만들었다.마늘과 청양고추를 잘게 썰어 올리브유에 볶다가미리 해감하여 씻어둔 바지락 조개를 넣고 화이트 와인을 적정..
오늘, 서른두번째 생일이다. 바로 어제까지가 휴가였던 고로, 당직을 서야 하는 오늘, 아침에 일찍 일어나 엄마가 끓여주신 미역국을 간신히 얻어먹고 병원으로 와 하루를 보내고 있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는 어서 어른이 되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고등학교 때부터는 왠지 모르게 나이든다는 건 뭔가 잃어간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래도 20대에는 한살한살 나이를 먹으면서 내가 성장한다는 느낌이 있었던 것 같은데 어느샌가부터는 나이를 숫자로만 먹어간다는 느낌이다. 10대, 20대 때 상상했던 서른살 너머의 삶은 지금과 같은 것은 아니었으리라. 서른 살이 넘으면 훨신 넓고 깊어진 내 모습을 기대했었는데. 물론 그렇다고 20대로 돌아가고 싶은 건 아닌데, 난 언제부턴가 방향을 잃어버린것 같다. 올해 마흔인 어느..
인간관계란 어때야만 한다는 이상에 근거해서 행동하지 않고 그냥 서로 사랑하고 가능한 최대한 진실하게 살 수 있기를. 거짓말 같은 건 전혀 하지 않고서. 앉아서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며 마음속 생각을 자유로이 말할 수 있기를. 자기의 이해에 따라 상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관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단지 누군가가 18년 전이나 혹은 과거의 어느 때 서약을 했다는 이유로 나와 함께 머무는 건 싫다. 원하기 때문에, 사랑하기 때문에, 나와 함께하는 것이 그에게 가장 절실히 필요하다는 믿음 때문에, 바로 그런 이유로 내 곁에 머물러야 한다. 깨어서 의식하는 삶, 그야말로 내가 진정으로 열망하는 삶이다. - 에단 호크, 중
2013년 2월 7일. 고레파니의 롯지에서 묵었던 방 창문으로 멀리 보이는 안나푸르나 남봉(Annapurna South). 그 전날 아침엔 온통 뿌옇게 흐려서 봉우리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는데. 이날 아침을 먹고 짐을 싸면서 창밖 너머 저 봉우리를 자꾸만 쳐다보았던 기억이 난다.ㅎㅎ 겨울휴가를 집에서 보내고 있자니 자꾸 생각이 나네... 그립다. 내년엔 꼭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에 갈테다.(아.. 다른 네팔 여행 사진들은 어디에 뒀더라...)
어떠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가장 행복할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하곤한다.죽음과 행복이라는 말 자체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지도 모르겠지만, 죽음 역시 삶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인다면 가능한 조합일거다. 예상하지 못했던 사고로 인한 죽음 또는 암을 진단받은 시한부 인생.사람이 죽는 데에 별의별 일들이 다 있겠지만 병원에서 일하면서 흔히 떠올리게 되는 죽음은 이 두가지 정도. 손쓸 수 없을 만큼 병이 깊어진 상태라면 통증 때문에 매우 고통스러울 수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남은 여명을 예상할 수 있는 상태에서, 지난 인생을 정리하며 세상과 작별할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그보다 행복한 죽음이 또 있을까 싶다. 너무 젊은 나이에 그리 된다면 행복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젊은 나이에 갑작스레 죽는것보다는 차라리 ..
엄마가 식당을 처음으로 개업하시던 날이 기억난다. 수능을 3개월쯤 앞둔 초가을이었을 거다. 학교가 있는 강서구에서 엄마 가게가 있는 강남구까지 와서는, 손님으로 복작거리던 가게 한켠(도 아닌 실은 가게 밖 테이블)에서 정신없이 후루룩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이듬해 여름, 우리 가족은 가게 바로 옆의 아파트로 이사했고, 지금껏 그 동네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손으로 꼽아보니 장장 15년. 칼국수에서 시작해, 고기집으로 간판을 바꾼 엄마 가게는 그 동네에서 유일하게 10년이상 주인도, 간판도 바뀌지 않은 식당이라고 한다.(물론, 간판 리모델링은 했다.ㅋ) 가족들과 함께 고기를 먹으러 오던 꼬마가, 다 자라 외국으로 유학을 간 후에도 한국으로 돌아오는 방학 때면 늘 엄마 가게에 한번은 온다..
새벽 3시다.부랴부랴 데이터 분석을 하다가 12시에서 1시 사이에 나도 모르게 방바닥에 누워 잠이 든 모양이다.눈이 떠져서 다시 하던 일을 할 생각으로 앉아 있다.요즘 들어 며칠, 아침 아니 새벽에 눈이 일찍 떠졌다. 좀 이른 시간에 눈이 떠지더라도 일찍 일어나야할 이유가 딱히 없으면 다시 잠에 빠져들곤 했던 내가, 최근 며칠간은 평소보다 1시간 이상 일찍 일어나, 딱히 일찍 출근해야할 이유가 없는데도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섰다. 지금도 그렇고. 질량 보존의 법칙마냥, 평생 수면시간의 총합은 정해져있는게 아닐까.정말 그렇다면, 난 이제 잠을 줄일 때가 된건지도 몰라. 이 묘한 시각, 새벽 3시.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2월 중순, 응급실 근무로 시작된 나의 인턴시절. 인턴 전반기 6개월을 보낸 병원은 응급실에 레지던트가 없었다. 인턴 다섯명과 스탭선생님들만 계셔서, 이제 막 의사가 된(심지어 아직 '의사면허증'을 받지도 않았을만큼 갓 의사가 된) 나같은 인턴들이 환자를 봐야했다. 기본적인 문진과 진찰을 하고, 의심되는 진단명에 따라 검사를 처방했다. 물론 때때로 환자들이 집에 가져갈 약을 처방하기도 했고. 심각한 부상을 입었거나, 기존의 만성질환이 악화되어 온 환자, 수시간 내에 응급수술이 필요한 환자 등 결코 간단하지 않은 문제로 응급실에 오는 환자들을 보는 건, 의학적 지식을 꽤 활용하면서 즐거움과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이기도 하지만 생각대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경우엔 괴로운 스트레스이기도 했다. 응급실을 찾는..
올해 초에 네팔/히말라야 여행 다녀오고 나서 마음먹었던 한 가지가, 앞으로 어떤 나라를 여행할 때,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중요하고 의미있는 활동을 한다고 생각하는 운동단체 한 곳에 전체 여행경비의 일정비율을 기부하는 것. 그런데 이번 여름에 태국에 다녀오면서, 스스로 그런 약속을 했다는 걸 까맣게 잊고 있다가 며칠 전에서야 생각이 났다. ^^;직업이 직업이고 관심사도 그렇다보니 아무래도 보건과 관련된 분야를 찾게 된다. 여행에서 돌아온지는 벌써 한달반이나 지났지만 뒤늦게나마 태국의 에이즈 예방이나 노동안전보건과 관련된 활동을 하는 단체를 찾아보고 있는데 쉽지가 않다. 이번엔 늦었지만, 다음부터는 떠나기 전 준비단계에서부터 어느 단체에 어떻게 기부할지 알아보는 것도 포함시킬 생각이다. 그러면서 그 나라에 ..
처음 바라나시에 도착하고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기 시작할 때쯤, 가트에 서서 강가를 바라보니 보트 여러대가 이렇게 줄지어 있었다. 참 뭔가 경건해보이기도 하고, 그런 풍경이 예쁘기도 해서 사진을 찍었다.그런데 그게, 보트업자들이 모두 파업 중이라서 볼 수 있는 풍경이라는 걸 그 땐 상상도 못했다. 바라나시에서 5일인가 머물렀는데 파업은 지속되었고, 결국 보트 투어는 하지 못한 채, 아그라행 기차표를 예매했다. 내가 떠나고 2,3일 정도 바라나시에 더 머물렀다던 친구는 바라나시에서의 마지막날 보트를 탔다고 했다. 아무튼, 바라나시에 다시 가야할 이유가 명백한 셈.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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