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중순, 응급실 근무로 시작된 나의 인턴시절. 인턴 전반기 6개월을 보낸 병원은 응급실에 레지던트가 없었다. 인턴 다섯명과 스탭선생님들만 계셔서, 이제 막 의사가 된(심지어 아직 '의사면허증'을 받지도 않았을만큼 갓 의사가 된) 나같은 인턴들이 환자를 봐야했다. 기본적인 문진과 진찰을 하고, 의심되는 진단명에 따라 검사를 처방했다. 물론 때때로 환자들이 집에 가져갈 약을 처방하기도 했고. 심각한 부상을 입었거나, 기존의 만성질환이 악화되어 온 환자, 수시간 내에 응급수술이 필요한 환자 등 결코 간단하지 않은 문제로 응급실에 오는 환자들을 보는 건, 의학적 지식을 꽤 활용하면서 즐거움과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이기도 하지만 생각대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경우엔 괴로운 스트레스이기도 했다. 응급실을 찾는..
벌써 두 달 전의 일이다. 진찰 대상자 명단의 사번을 보니 그는 이 자동차 공장에서 일한지 아직 만 3년이 되지 않았다. 명단에 나이는 나와있지 않았지만 재작년에 대학에 입학한 내 막내동생이 떠오를 만큼 앳된 얼굴이었다. 입사 이후 지금까지, 오른팔에 힘을 주고 어깨를 돌리며 자동차 도어에 웨자를 끼우는 작업만 해왔는데, 일하는 동안 팔과 어깨가 너무 아프다고 했다. 신체진찰을 해보니 관절이나 뼈의 문제, 근육의 심각한 손상보다는 반복작업에서 비롯된 근육통일 가능성이 높았다. "뭉쳐있는 근육을 풀어주려면 자주 스트레칭을 하셔야 돼요. 어깨에 무리가 가지 않는 작업을 하는게 가장 좋겠지만 이 일을 계속 하면서 통증을 예방하려면 장기적으로는 근력 운동을 하셔야합니다." 바로 내 앞에 앉아있는 그의 얼굴에 희..
얼마전 새삼 깨닫게 된 한가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각종 물건들은 다양한 형태의 노동의 결과물이라는 것. 거기서 더 나아가, 그 생산 과정에서 분명 누군가는 그와 관련된 각종 유해인자에 노출되거나, 때로는 실제로 불건강을 경험한다는 사실이다. 많은 이들이 애용하는 아이폰도 그렇다. 아이폰의 성능과 디자인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애플사의 대표적 납품업체인 폭스콘사의 중국 공장의 젊은 노동자들이 과중한 업무와 부당한 대우에 시달리고, 적잖은 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은 이미 꽤 알려진 내용이다. 아이폰 사용자 중 그런 사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니, 알고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늘 일상에서 접하는, 좀 더 평범한 한가지를 예로 들어본다면, 책. 지난 달, ..
어느덧 3월이 절반이나 지났다. 올해를 시작하며 다짐했던 것들이 벌써 가물가물해지려고 해서 떠올리려는 노력을 조금이나마 해야한다-_- 작심삼일이라더니, 3일마다 한번씩 다짐을 업그레이드해야할 판이다. 이러한 상황이니, 요즘 나를 가장 심란하게하는 기저의 한가지 생각-뭔가 더욱 창의적이거나 발전적인 고민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그런 고민도, 대강의 밑그림도 없이 때마다 닥친 일들을 해치우며 하루하루 '연명'하고 있달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사람들이 늘 내 주변에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이다. 어떤 새로운 집단의 일원이 되기 전에 가장 걱정스러운 점은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건데, 돌이켜보면, 늘 어디서건 좋은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고 그..
또 실수다. 재원환자가 많으면 많은대로, 또 이렇게 적어지면 적은대로. 어제 입원한 환자 chest PA를 미처 확인하지 않았다. 아니, 분명히 열어보긴 열어봤던 것 같은데 왜 그 확연한 pneumothorax를 보지 못했던걸까! 아아악- 특별히 호소하는 증상도 없었던 터라 그냥 무심코 지나쳐버렸나보다. 50%는 족히 되어보일만한 pneumo를-_- 결국 오늘 아침 예정되어있던 bronchoscopy는 취소되었다. 환자에게 폐를 끼친 셈이다. 그나마 그 분이 약간 늦은 아침식사라도 하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질까. 나도 어제 저녁에 그것 때문에 할일이 생겨서 외출도 포기하고 살짝 슬퍼하고 있었는데. 대부분의 레지던트들이 겪는 malpractice의 큰 부분은 자신이 처방한 검사의 결과를 확..
며칠 전, 서울에 오자마자 낯선 병원에서 실습을 했다. 몇년만에 겪어보는 러시아워 출퇴근 때문에 내내 피곤했고. 처음 만나는 교수님들과 선생님들 틈에서 나도 모르게 주눅들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무척 즐겁고 행복한 한 주를 보냈다. 생각치못했던 선생님들의 배려에 감동했고, 덕분에 기대 이상으로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당장 내가 뭔가를 배운다기 보다는, 앞으로 어떤 의사가 되어야할지, 어떤 의사가 되고싶은지 좀 더 고민해보고 다짐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심지어는, 불과 몇 개월전까지만 해도 인턴 끝나고 1년 쯤은 놀아야겠다고 은근슬쩍 정해두고 있었는데, 이제는 조금이라도 더 빨리 공부해서 실력을 갖춘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을 정도다. 이제 목표가 뚜렷해졌으니, 기꺼이 즐..
[제임스 웰시] 인권을 고민하는 의사 [2008.10.24 제732호] [사람이야기] » 제임스 웰시(59) 국제앰네스티 건강과 인권팀 팀장. 윤운식 기자 “이제 의사들이 ‘치료’를 넘어 ‘인권’을 고민해야 한다.” 10월16일 한국을 방문한 제임스 웰시(59) 국제앰네스티 건강과 인권팀 팀장이 말했다. 웰시는 ‘건강과 인권’을 주제로 15~19일 열린 제59회 세계의사협회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25년째 국제앰네스티에서 건강권 분야를 책임지고 있다. 건강권(right to health)은 ‘누구나 가능한 한 최고로 건강할 권리’를 말한다. 건강권 실현을 위해 각국 정부는 시민의 건강 계획을 세우고 누구나 의료 서비스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국제앰네스티는 건강권 실현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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