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38주0일 첫 내진에서 이미 자궁이 3cm 열려있었고 39주3일에 이슬이 비쳤다. 

이제 정말 출산이 임박했구나 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시간은 별일없이 흘러갔다. 

 

오전9시경 : 진통 시작 

3일 후인 39주 6일 일요일 아침.

여느 때처럼 좀 일찍 눈을 떠 이런저런 일을 하고 있었는데 

오전 9시쯤부터 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했다. 약한 생리통 정도였다. 

주기를 재보았는데 약간 들쑥날쑥하긴 했지만 10분 안쪽이었다. 

짝꿍을 깨워 곧 병원에 가야될 것 같다고 이야기하고, 같이 집을 대충 치우고 출산가방을 점검했다. 

그리고는 진통주기가 5~7분 정도이던 11시반쯤 병원 분만실에 연락하고

12시가 거의 다 됐을 무렵 드디어 출발!

 

일요일 낮이라 강변북로가 좀 막힐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다. 

12시 넘어 도착했기 때문에 입원하더라도 점심 시간이 이미 지나있어 병원식을 먹을 수는 없을 터였다.

잠시 고민하다가 병원 앞 서브웨이에서 샌드위치를 먹고 들어가기로 했다. 

쉬림프샌드위치 30cm를 시켜서 같이 나눠먹었다. 나는 먹는 동안에도 5분 정도 간격으로 계속 진통이 있었는데 

나중에 알았지만 짝꿍은 몰랐다고 한다...-_- 내가 너무 내색을 안했나보다 ㅋㅋ

보통 이상의 통증이었던 것 같은데.. 그도 긴장해서였을까. 

암튼 짝꿍이 샌드위치 먹을 때도 계속 진통중이었냐고 나중에 물어봤을 정도였으니

통증이 그리 세지는 않았던 것으로..

물론 대략 1시간 후 쯤 닥쳐올 통증에 비하면 워낙 참을만한 정도이긴 했다. 

 

오후1시 : 입원 

샌드위치를 먹고 나니 거의 12시 40분쯤이었던가. 

분만실로 올라가서 입원한 시각이 1시. 

가족분만실에 입원하기로 했었는데 이미 24시간 중 13시간이 경과한 시점이라 일반 병실에서 

일단 좀 고민해보기로 했다. 

그 곳에서 전공의샘이 내진하고, 태동검사도 했다. 

진통은 5분 간격이었고, 자궁은 4cm 열려있다고 했다. 

그리고 양막이 탱탱하게 터지기 직전 상태라 곧 터질수도 있다고.. 

그렇게 되면 아기가 갑자기 쭉 아래로 내려올수도 있다고 했다. 

 

간호사샘 말로는 지금 이 정도면 오늘 밤 자정 전에 낳을 가능성이 높아보인다고 해서 

고민없이 바로 가족분만실로 들어가기로 했다. 

틈틈히 공부한대로 함께 이 시간을 견디는 것이 우리의 계획이었으니 

좀 더 편안한 가족분만실로 한시라도 일찍 들어가는게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후1시30분~2시 : 양막파수, 그리고 급격한 진행

그래서 가족분만실로 옮긴게 거의 오후 1시반쯤. 

짐을 옮기고, 준비한 음악을 틀고, 5분 간격의 진통을 너댓번이나 겪었을까. 

그래도 그 땐 좀 심한 생리통 정도였다. 

그러다 변의를 느끼고 가족분만실 안에 있는 화장실 변기에 앉았다.

그런데 곧 피 섞인 물 같은 액체가 주르르 흘러내렸다. 

양수인것 같아 바로 콜벨을 눌렀다. 간호사샘이 와서 확인하더니 다시 침대로 돌아가자고 했는데.. 

바로 그 때 겪어본 적 없던 극심한 통증이 갑자기 시작됐다. 

화장실 앞에서 침대까지 열발짝도 안되는 거리인데 걸음을 떼기조차 어려웠다. 

나도 침대로 가고 싶은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침대로 올라가는 것도, 전공의샘이 와서 내진해야하니 다리를 벌려보라고 하는 데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조금씩 조금씩 강해진 통증이 아니라 양수가 터지고 나서 갑자기 

통증이 극심해지니 순간 너무 무서웠다. 

그때부터 누워서 짝꿍 손을 잡고 거의 눈을 감고 있었는데

분만실 상황이 갑자기 급격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의료진이 바쁘게 방을 드나들며 움직였다. 

나의 첫 출산이 '정말' 임박해있었다. 

 

내진 결과, 아기가 이미 많이 내려와있다고 했다. 

그리고는 전공의샘이 교수님과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그렇게 여유있는 상황은 아닌것 같습니다."

 

스테이지가 빨리 진행됐다고.. 양수가 터지면서 아기가 빠르게 내려왔다는 의미였다. 

교수님과 통화한 고년차인듯한 전공의샘이 내 자궁경부에 손을 넣을 때 내진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일요일 낮이라 병원 밖에 있던 교수님이 도착할 때까지 그는 계속 손을 빼지 않고 있었다. 

별다른 설명을 듣진 못했지만 아기가 더 이상 내려오는 것을 막기 위해 손으로 막고 있었던 것 같다. 

어느 순간에는 그 분이 짝꿍에게 "아무래도 교수님께서 (아기를) 받으시는 게 낫겠지요?"라고

묻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힘을 주지 말고 이완해야할 때가 있고, 힘을 줘서 아기를 밀어내야하는 때가 있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연습을 미리 많이 해봤다면 더 잘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그런 통증에 시달리는 상황을 연습할 수는 없으니까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을 것 같다.

게다가 나의 경우, 여느 사람들처럼 차근차근 단계적으로 진통이 진행된게 아니었기 때문에 

더 어렵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너무 갑자기 닥친 '막판 진통'이었다. 

 

오후 2시49분 : 아기를 만나다 

마지막엔 거의 1,2분 간격으로 진통이 왔던 것 같다. 

진통이 오면 대변 마려운 느낌이 강하게 들면서 아팠다. 골반에 큰 수박이 껴있는 느낌이 든다고들 하던데

난 그렇다기보다는 거대한 대변(...) 덩어리를 밀어내야하는 상황 같았달까.

암튼 그럴 땐 힘을 주지 말아야한다고 하는데 그게 내 맘대로 되는게 아니었다.

그냥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는 거였다. 

그런데 자꾸 그 전공의선생이 "힘 안주셔도 돼요~"라고 타이르듯 말해서 실은 좀 짜증났었다. ㅋㅋ

힘 주지 말아야되는건 나도 알고 있다구요! 내가 의지대로 힘주고 있는게 아니라구요! 라고 속으로 여러번 말했다. 

물론 난 그 말을  입 밖에 낼 에너지가 없었다. 너무 아파서..ㅠㅠ 

내내 내 손을 잡고 있던 짝꿍이 그나마 이완할 수 있도록 호흡하자고 말해준 덕분에 

(제대로 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희미한 정신줄을 붙잡고 그렇게 호흡하려고 시도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진통을 견뎠을까. 

"아마 30분내로 아기 얼굴 보실수 있을거에요."라고 그 전공의샘이 짝꿍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 

진통한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는데 곧 아기를 만날 수 있다니. 

나중에 짝꿍에게 들은 바로는, 그 때가 거의 2시반쯤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아마도) 몇분 후 교수님 도착! 

이제 정말로 있는 힘껏 힘을 줘야할 타이밍이었다. 

통증이 밀려올 때 대변 보듯이 힘을 쭉~ 길게 주라고 했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그런데 정말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더 길게 힘을 주면서 밀어내야 한다고, 다음번 진통이 올 때는 그렇게 하자는 말을 들었고, 

그 다음엔 최대한 길~게 힘을 줬다. 뭔가 묵직한 것이 자궁을 빠져나간 느낌이 들었고, 

이내 아기 울음 소리가 들렸다. (그렇다. 난 딱 두 번 힘 주고 아기 낳은 여자... ㅋㅋ)

 

탯줄을 짝꿍이 잘랐는데, 탯줄을 자르고 나서였던가 그 전이었던가, 아기가 내 가슴 위에 올려졌다. 

아기는 눈을 감고 울고 있었다. 

"열매야~ 엄마야~" 

엄마 목소리를 알아듣는 건지 아기는 울음을 그치고 눈을 뜨려 애쓰고 있었다. 

"열달 동안 엄마 뱃속에 있던게 너였구나"

아래쪽에서는 처치가 이뤄지는 동안 나는 세상에 처음 나온 아기에게 엄마 목소리를 들려줬고

처음으로 젖을 물렸다.

바라던대로 내 머리맡을 내내 지키던 짝꿍과 함께 세 식구의 첫 사진을 남겼다.  

아기 보자마자 눈물이 나올 거라고 예상했었는데 막상 그렇진 않았다. 

너무 신기하고 놀라울 뿐이었다. 

아기는 생각보다 훨씬 작고 연약해보였다. (3.44kg이었는데도) 

내 뱃속에 아기가 들어있다는 게 영 신기했는데 이렇게 작은 아기라서 그게 가능했구나 싶었다. 

 

산부인과 수업 때 들은 것으로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급속분만'. 

내가 바로 그런 사례였다.

병원 도착후 2시간만에 아기가 나왔지만 사실 손으로 막고 있지 않았다면 더 일찍 나올수도 있었다. 

초산인데도 진통시간이 짧아 다들 순산했다고 축하해줬지만 산도 손상이나 출혈 등의 부작용도 있을수 있고 

아기가 위험할 수도 있는 것이 급속분만. 내가 정작 축하받아야할 것은, 급속분만임에도 특별한 문제 없이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이다. 회음부 열상이 있었지만 보통의 초산부들 수준이라고 했고, 자궁수축도 잘 되어 

출혈 문제도 없었다. 게다가 출산 후 한두시간 후쯤 침대에서 일어나 가족분만실 안을 걸어다녔고(간호사샘들이 신기하다고 했다) 붓기는 거의 없었다. 그리고 네시간후엔 무사히 소변을 보았다. 

무엇보다 아기가 건강했다. 특별히 소아과적인 처치가 필요하지 않은 상태라

내가 원하던대로 출산 후 처치가 모두 끝난 뒤 길지는 않았지만 가족분만실에서

우리 세 식구만의 시간을 오롯이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34주에 조기진통으로 입원했을 때 질 분비물 배양검사에서 GBS 양성이 나와

분만시 아기에게 감염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분만 4시간 전에 항생제를 맞았어야 했다. 

입원하자마자 항생제를 맞았는데도 2시간이 채 안되어 아기가 나와 예방 효과를 장담할 수 없었지만

며칠 후 아기 혈액에서는 균이 배양되지 않았다. (감염되지 않았다고 봄) 

 

그게 벌써 3주전의 일이다. 

아기를 키우는 일은 역시나 힘들지만, 하루하루 달라지는 아기를 보며 

이 역시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이라 생각하니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진다. 

 

 

 

 

 

 

'ordinary scene' 카테고리의 다른 글

  (0) 2021.07.19
39주, 이제 그만 나와주겠니? :)  (0) 2019.05.24
37주, 태동  (0) 2019.05.08
아이가 온다는 것  (0) 2019.05.02
임신 36주, 이번주만은 넘기길.  (0) 2019.04.30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