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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dinary scene

아이를 떠나보내다

갈매나무 2017. 7. 18. 10:54

2-3주전부터는 제법 임산부 테가 나기 시작했다. 지난주는 임신 21주차였다.

한달만에 산부인과 진료를 받으러 가던 날. 진료 전에 정밀 초음파 검사가 예약되어있었다.

 

여느 때처럼 초음파실 베드에 누워 남편과 함께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초음파를 보던 테크니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화면에 보이는 아이는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심장도 뛰지 않았다.

당황한듯한 테크니션은 밖으로 나가더니 다른 직원을 불러왔다.

 

20주 안팎이면 태동을 느끼기 시작할 시기다.

아직 태동이 없어서 혹시 무슨 문제가 생긴것은 아닌가 조금 걱정되긴 했지만

태동을 느끼는 시기는 개인차가 있어서 괜한 걱정이려니 했다.

하지만 태동이 없었던 건 아이가 정말 움직이지 않아서, 살아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머리로는 알겠는데,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눈물이 나오지도 않았다.

 

진료실로 가서 다시 초음파로 확인했다.

예상했듯 당연하게도, 임신 종결을 해야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꽤 담담했지만,

뒤늦게 눈물이 터졌다.  

 

입원 준비하러 집에 가는 길,

씩씩해보이던 남편이 미안하다고 말하며 흐느끼며 울었다.

눈물이 고인 모습을 본 적은 있었지만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그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가 미안해할 일이 전혀 아닌데.. 마음이 아팠다. 

 

입원 수속을 위해 병동 스테이션으로 갔다.

그런데 하필이면 병실이 있는 세 층 중 스테이션 바로 맞은 편에 신생아실이 있는 층이었다.

정말 자그마한 갓난아기들 열댓명 정도가 쪼르르 누워있었다.

입원 수속을 기다리면서 스테이션 앞을 이리저리 기웃거리다가 별 생각없이

신생아실 가까이 다가가 유리창 너머 아기들을 바라보았다.

태어난지 하루이틀된 아기들, 아마도 인턴 때 이후로 처음 보는 신생아들.

이렇게 작았던가..?  또다시 눈물이 샘솟았다. 

이 병원에서 분만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예정대로라면 11월에 나도 저런 아이를 품에 안게 될 것이었다.

 

저 아이들을 낳은 산모들과 같은 병실에서 이틀이나 사흘간 같이 있어야 한다면 너무 괴로울 것 같았다.

다행히(?) 병동에 빈 병실이 없어서, 분만실에 딸린 가족분만실로 입원했다.

이따금씩 산모들이 진통하며 신음하는 소리와 갓태어난 아기 울음 소리가 몇번 들리긴 했지만

그래도 병동의 병실보다는 나았고, 1인실을 쓰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초기 유산은 대개 하혈을 통해 태아가 배출되거나 소파 수술을 하는데

우리 아이는 이미 꽤 커서 유도분만 하듯 분만해야했다.

자궁경부를 부드럽게 만드는 질정을 몇번 넣어 자궁경부를 열고, 자궁수축제를 쓰는 방식이다.

그래도 태아와 태반이 완전히 배출되지 않으면 소파수술을 해야한다.  

 

무서웠다.

막달까지 특별한 위험요인이 없다면 오롯이 나와 아이의 힘으로 출산을 치를 생각으로

자연주의 출산을 계획하고 있었지만, 그건 아직 넉달 후에나 있을 일이었다.

분만시의 진통을 완화하기 위한 방법들을 남편과 함께 배우며 준비할 생각이었다.

예정일 즈음의 진통보다는 덜 하겠지만 그래도 이건 전혀 예상하지도, 준비하지도 못했던

너무나 급작스럽게 맞게된 이른 '출산'이었다.

여느 출산이라면, 진통 과정이 힘들어도 아이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와 희망이 있지만

이미 죽은 아이를 내보내기 위해 진통을 겪어야 하다니,

고통과 슬픔이 두배, 세배로 증폭되는 것 같았다.

이미 마음이 무너진 상황에서, 역설적이게도 이 상황에서 서둘러 벗어나기 위해 내 몸은 힘을 내야했다. 

 

입원 후 4-5시간 간격으로 질정을 세번 정도 넣었다.

생리통같은 복통이 느껴졌다. 거기까진 괜찮았는데 너무 기운이 없었다.

베드에 계속 누워있을 수 밖에 없었다.

방 안에 있는 화장실에 왔다갔다 하는 것 조차 힘겨웠다.

자다가, 밥 나오면 밥 먹고, 남편이랑 이야기 나누고, 또 자고..

밤 11시 좀 넘어 마지막으로 질정을 넣은 후 잠을 청했다.

 

새벽 1시반쯤 배가 아파서 잠에서 깼다.

변의가 있어서 화장실에 갔는데 통증이 더 심해졌다. 대변이 좀 나왔는데도 배가 더 아팠다.

분명 변의가 동반된 통증이었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자 그런게 아닌것 같았다.

정확히 어디서 비롯된 통증인지 알수 없을 정도가 되었고, 정도는 더 심해졌다. 

변기에 앉아 땀을 흘리며 한 손으로는 수건걸이를 꽉 잡은채 한동안 괴로워하고 있었다.

남편을 깨울까 말까 망설이면서,

어렴풋이 자궁 수축으로 인한 통증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어느 순간 묵직한 무언가가 질을 통해 빠져나갔다. 그리고는 통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아이가 빠져나갔겠구나.'

 

남편을 깨워 간호사를 불렀다. 역시 예상대로 그러했다.

간호사가 폴리장갑을 끼고 비닐봉지를 들고 다시 와서 뒷처리를 했다.

아마 아이는 저 봉지에 넣어져 화장터로 보내질 것이었다.

입원 수속하면서 몇가지 동의서에 싸인을 했는데,

모 장의사를 통해 사태아를 화장한다는 동의서도 포함되어있었다.

 

내 마음이 어떤지 알수 없는 상태로 다시 베드에 돌아와 누웠다.

잠시 후 당직 선생님이 내려와 초음파를 봐주셨는데,

다행히 태반까지 깨끗하게 배출된 것 같으니 소파수술은 하지 않아도 될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자궁수축제를 맞지 않아도 되고 소파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긴 했다.

일단 그 상황이 종료되었으니까.

그때가 새벽 2시반쯤.

남편이 머리를 쓸어주며 토닥여주었다.

몸이 한결 편안해진 상태로 잠이 들었다.

입원한지 열두시간만이었다. 

 

나의 생애 첫 임신은 그렇게 끝났다.

화장실에서 혼자 끙끙대던 그 새벽,

남편과 내가 새싹이라 부르던 그 아이는 다섯달만에 심장이 멈춘채 세상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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