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필름 카메라를 사랑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것. 여행이 끝나고 한참 후에, 잊을 뻔 했던 그 순간의 기억을 끄집어낸다. 몇년간 몸에 배인 능숙함의 결과물인지 운좋은 우연의 일치인지 모를, 행복한 프레임. 유쾌한 친구들 셋, 그 사이에 꼽사리껴서 함께 꼴리지 스트리트에 갔던 날이었다. 트램을 타고 '그냥' 꼴까따 구경을 하다가 어딘지도 모른채로 '여기좋네'하면서 내렸던 곳. 자인교 사원을 구경하고 나니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가야하나, 어떻게 해야하나... 마음이 조금 불안하던 그 때도 우린 '여행자답게' 사진을 찍었었다.ㅎㅎ 한두사람에게 길을 묻자 우리들 주변으로 모여든 십수명의 사람들. 그들 덕분에 우린 무사히 지하철을 타고 파라곤으로 돌아왔다. ^^
첫번째 도시였던 꼴까따에서 다른 곳으로 떠나는 것은, 내가 넘어서야할 높은 산처럼 느껴졌다. 낯선 여행지의 식당에서 혼자서 밥을 먹거나, 북적이는 거리에서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릭샤왈라와 1:1로 맞짱뜨거나, 마살라 향이 유난히 강한 어떤 인도 음식에 도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혼자서 열몇시간 밤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는 것은 몇주간의 인도 여행에서 언젠가 한번은 내가 꼭 풀어내야하는 미션이었다. 행선지를 결정하는 것부터, 기차표를 예매하는 것, 어두운 시간에 기차역으로 가는 것, 그리고 기차에서 내 짐을 어떻게 관리할 것이고, 화장실 갈 땐 어찌할 것이며, 외국인여자에 대한 인도남자들의 호기심가득찬 찝적댐에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이른 아침 행선지에 도착해서 어떻게 여행자거리로 가야할지... 인도에서의..
고등학교 3년은 그리 괴롭지 않았다. 새벽에 집을 나서 별보며 집으로 돌아오던 매일매일이 쉽지 않았는데도 학교가는게 좋았다. 방학이 길어지면 학교에 가지 않는 날들이 이내 지겨워졌고 졸업하고도 몇년간은 네모난 교실에서 아둥바둥거리던 나날들이 이따금씩 그리워지곤했다. 지금은, 그다지 괴롭지는 않은데... 그나마 좀 여유가 있는 요즘 돌이켜 생각해보건대, 네모난 강의실에서 130여명이, 그것도 고등학교 때처럼 고만고만한 130명이 아니라, 전공, 나이를 비롯 지난 삶의 배경이 다양한 130여명이 모여 매일 부딪히는 이 생활은, 사람을 퇴화시키는 것 같다. 고차원적으로 사고하는 방법을 나도 모르는 사이 점차 잊어버리고 있는 느낌. 원래의 (이게 원래 모습인지도 모르겠다만) 모습을 잃어가고, 서로를 너무 가까이..
지난 겨울, 인도의 McLeod Ganj. 매스컴에서는 '다람살라'라고 불리는 그곳. (다람살라 중에서도 달라이 라마 망명정부가 있는 곳은 정확히, 맥그로드간지이다.) 8살 때 티벳에서 인도로 넘어온 이후로, 17살이 된 지금까지 티벳에 남은 부모님 얼굴을 보지 못했다는 고등학생, Tibetan leader였던 아버지가 어릴 때 중국에 의해 돌아가셨다는, 티벳이 독립하면 다시 티벳으로 돌아가고 싶다던 어떤 친구, 설날 아침, 티벳의 가족들에게 새해 인사를 하기 위해 전화샵앞에 길게 줄서있던 사람들... 언젠가 티벳에 여행가게 되면, 티벳에 있는 자기 가족들에게 미리 연락해놓을 테니 라싸에 있는 자기 집에 가서 머무라고 이야기했던 친구... 그의 가족들은 지금 무사할까. 외부와의 단절 때문에 인터넷뉴스 외..
47번 방에서 이틀밤을 보내고, E언니가 떠나면서 빈침대가 생겨 도미토리로 옮겼다. 밤에 잠을 자는 때말고는 싱글룸에서 혼자 시간을 보낼일이 거의 없긴 했지만 아무래도 그 방은 좀 우울했다. 게다가 그 방을 본 언니들이 '여기에도 방이 있는줄 몰랐다'라고 말했을만큼 1층의 구석진 곳에 있었다. 또 언니들이 혼자 여행할 때는 싱글룸보다 도미토리가 더 좋다고 권해주기도 했다. 내가 들어간 방은 침대가 7개 있었는데, 나를 포함한 한국인 여자 넷, 일본인 남자 셋이 머물고 있었다. 3일간 그 방에 머무는 동안, 나는 한국인 여자들보다도 일본인 남자들과 더 가까워졌다. 그 사람들이 좀 다들 독특하고 재밌어서 이기도 했고... 한국인 여자 둘은, 처음 인사하고 몇마디 나눌 땐 괜찮았는데 그 이후로는 줄곧 나를 좀..
(꼴까따에서의 첫 날 이후로는, 시간적 순서가 아닌, 사람들과의 에피소드 위주로 정리...) 다시 꼴까따에 가게 된다면, 가장 먼저, Paragon Hotel로 가서 도미토리의 빈 침대가 있는지 물어볼거다. 그곳에서 여러 여행자들과 처음 만났고 게다가 난 그 사람들이 좋았고, 앞으로 혼자서 여기저기 돌아다닐 용기와 자신감을 얻은 곳이니까. 그 곳이 첫번째 숙소라 그 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인도여행 기간 중 묵었던 숙소 중 가장 자유롭고 독특한 분위기의 숙소이기도 했다. 도미토리 앞에서 여행자들이 모여앉아 꽤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맥주를 마시거나 기타치고 노랠 불러도 심하게 제재를 하지 않았다. (조용한 숙소를 원하는 이들에겐 분명 짜증나는 점이겠지만) 꼴까따에만, 그것도 파라곤에서..
요즘 살찌는게 몸으로 느껴져서-_-; 지난주에 몇달만에 조깅을 좀 해봤는데, 어두워지면 학교운동장이 위험할수 있어서 못하고, 비오면 또 못하고... 그래서 예전에 꽤나 효과를 봤던 15분 순환체조를 다시...ㅎㅎ 달릴 때만큼의 상쾌함 따위는 없겠지만. 주의사항 : 한 항목은 모두 30초씩만. 10개 세트를 3번 반복하면 총 타임이 15분이 된다. * 시작 전 : 충분한 스트레칭 1. 점프하며 팔다리 털기 (유산소) 2. 팔굽혀펴기 (무산소) 3. 제자리 달리기 (유산소) - 무릎을 높이. 본인 능력의 70% 4. 스쿼드 (무산소) : 다리를 어깨 넓이로 벌리고 팔은 팔짱. 다리를 천천히 굽혀 허벅지가 땅과 수평. 다시 천천히 올림. 허리 곧게 펴기. 5. 다리 들어올려 걷기. 허벅지가 가슴에. (유산소)..
거리로 나섰을 때가 거의 2시.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먼저 먹은 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Melissa가, 가보고 싶은데 있냐고 나에게 물어왔지만 나는 정말 아무런 생각도 계획도 없었으므로 ㅋㅋ 그냥 내키는대로 돌아다니자고 했다. Sudder st.주변을 돌아다니다가 만난 한 미국인 아저씨가 우리에게 한가지 제안을 했다. 그 아저씨도 심심하던 참이었나본데, 지하철을 타고 아무 숫자나 찍은 후 그 숫자만큼의 구간을 이동한 후 무작정 내려보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린 그렇게 하기로 하고 Park st.역에서 지하철을 탔다. 처음 타본 꼴까따의 지하철. 생각보단 괜찮았다. 좀 더 지저분하다는 것만 빼면 우리나라의 국철 수준과 비슷한것 같았다. 나는 숫자3을 찍었고 우린 세 정거장 후에 내렸다.(그 미국인 아저..
요즘 인도여행기를 쓰고 있다. 예전 베트남 여행 때는 고작 열흘 뿐이었는데도 여행하는 동안 일기를 쓰지 못했다. 아니 쓰지 않았다. 별로 필요성을 못느꼈던 것 같다. 적은 것이라곤 하루동안의 지출내역 정도 였는데 그나마도 매일매일 꼼꼼하게 쓰지 않았었다. 그런데 돌아가는 날을 이틀앞두고 카메라를 잃어버렸고, 그때까지 찍은 사진도 몽땅 날아가버렸다. 남은 이틀간 일회용 카메라 두 개로 찍은 사진 몇장이 그 여행의 기록의 전부가 되었다. 물론 아무리 기록을 열심히 한다고 해도 머릿속에, 마음속에 남은 것보다 생생할 수는 없겠지만, 모든 것들을 낱낱이 기억하고 있을 수는 없더라도, 그 때의 사진 몇장이나 혹은 기차표나 영수증을 보면 그것과 관련된 기억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시 떠오른다. 그런데 그런 기억의..
쑤완나품 공항에서 인도 항공사인 Jet Airways 비행기를 탔다. 서비스 정신 같은 건 아예 없는 것 같다는(그야말로 인도식ㅋ) Indian Airlines와는 달리 Jet Airways는 국제항공사 10위권 들었을 정도로 좋다는 얘기를 들어서 은근 기대됐다. (실제로도 좋았다. 기내식, 엔터테인먼트...) 방콕까지 타이항공으로 올 때는 승객 중 한국인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기내에 들어서는 순간 움찔하고 놀랐던 것은, 70~80%정도가 인도인이었다는 점. ㅎㅎ (인도 항공사이니까 사실 당연한거다 ^^;) 같은 아시안임에도 불구하고 동남아 사람들과는 달리 나와 확연히 다른 얼굴을 가진 그들 사이에 있으니 정말 낯선 느낌이 들었다. 유럽인, 동양인 여행자들이 몇몇 있긴 했지만 기내에서 거의 뒤쪽 좌석에 ..
비행기가 서서히 고도를 낮추면서 하나둘 뭔가 보이기 시작했다. 지붕이 있는 낮은 집들과 야자수, 좁은 강물 줄기. 그리고 노을빛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하는 하늘. 창밖으로 보이는 공항 부근의 마을 풍경이 아름답고 평화로워보였다. 잠시였지만 이런 곳에서 살아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 수속을 마치고 환전을 한 후 공항 밖으로 나오자 이미 어두워져있었다. 공항 안에서는 잘 몰랐는데 역시 밖으로 나오니 더운 나라의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태국에 온거다. 문제없이 공항버스 정류장을 찾을 수 있었고, 카오산으로 가는 AE2 버스 티켓을 샀다. 정류장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만난 한국 사람 둘. 비행기 옆자리에 앉았던, 한국에서 유학중이라는 중국 여자아이는 열외로 한다면 그 두 사람이 내가 여행지에서 만난 최초..
지난 학기가 거의 끝나갈 때 즈음 대학원에서 공부를 시작한지 벌써 '2년이나' 지났다는 걸 새삼 깨달았음과 동시에, 지난 2년과는 좀 다른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학기를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사실 굳이 스스로 다짐하지 않아도, '3학년'이라는 말 자체가 가지는 무게감 때문에라도, 자연히 달라진 모습으로 시작하게 되지않을까 기대했다. 인도에서 돌아온 바로 그 주 주말에 태안에서 기름유출사건에 의한 건강영향 실태조사에 참여했다. 그 사건과 관련해 매스컴에서 접해오던 것 이면의 여러가지를 느끼고 생각하게 된 한편, 내 개인적으로는, 나의 능력으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 여러 사람들이 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데에 내 몫을 찾고 그걸 다해내는 사람이 되고싶다는 -애초에 이쪽 대학원..
가이드북을 읽으며 루트를 그려보거나, 인터넷으로 산 침낭에 쏙 들어가 누워볼 때면 여행 떠나기 전 특유의 흥분과 설레임으로 마음이 한껏 부풀어올랐다. 그러다가도 인도여행 카페 게시판에서 혼자 여행은 말리고 싶다는 글을 발견하기라도 하면 부푼 마음이 순식간에 뻥! 터져버리고 눈앞이 캄캄해지곤했다. 출발 전 몇일간, 하루에도 여러번씩 그런 싸인곡선을 오르내렸다. 이윽고 하루 전날이 되어, 엄마와 함께 (인도에서 자동로밍이 되는 기종의) 새 핸드폰을 사러 돌아다니고, 동생 방 가득히 물건들을 늘어놓고 짐을 싸면서 그런 기복은 점차 희미해졌다. 그날 밤, 아빠가 자꾸만 방문을 열어보시면서 일찍 자라고 재촉하셨지만 난 잘 수가 없었다. 배낭을 싸다보니 부족한 것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여지없이 드..
내 친구 S와 함께 여행을 가자고 이야기했던 것은 이미 여러해 전의 일이다. 2004년 초에 함께 남이섬에 다녀온 이후라는 건 확실하지만 언제부터 함께 여행을 가기로 약속한것인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어디로 여행을 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바이칼 호수를 이야기했던 적도 있고 태국의 치앙마이 이야기를 한 적도 있는 것 같은데, 어쨌거나 인도, 네팔로 귀결되었고 시기는 이번 겨울이었다. 10월부터 슬슬 준비하기 시작해 11월 초에 항공권을 결제했고, 비자를 발급받았다. 여행을 준비하는 동안 '다음 여행 때는 꼭 혼자 떠나야지'라고 생각은 해봤지만 사실, 당장 이번 여행 때 친구와 둘이 떠나게 될 것에 대해서는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일정이 겹칠지도 모른다는 아주 약간의 불안감은 있었지만 만약 그렇게 된..
첫번째 인도여행 2008.1.11~2.13 인천-방콕-꼴까따-바라나시-아그라-푸쉬카르-우다이뿌르-델리-맥그로드간즈(다람살라)-델리-인천 인도에서 돌아온지 일주일이 지났다.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 처음 외출을 나갔던 날은, 집 근처에서 2500원짜리 테이크아웃 라떼를 마셨는데, '이 돈이면, 100루피. 라씨 10잔 아니면 뗌뚝 두그릇 사먹을 수 있겠다. 도미토리 하루 숙박비를 내고도 남는 돈이네' 라고 나도 모르게 꼽아보고 있었다. 몸은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직 마음은 돌아오지 못했달까. 이제 부산으로 내려갈 기차표를 예약하고, 지인들과 만나 그간 쌓인 수다를 풀고, 지하철 가판대에서 즐겨보는 주간지를 오랜만에 사서 읽으면서 이제서야 2008년 2월, 서울 혹은 부산에서 살아가는 대학원생으로,나의 일상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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