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몇 개월만에 다시 시간을 거슬러 2008년 1월의 바라나시. 지은, 정모와 온전히 하루를 보낸 그 날은 내가 바라나시를 떠나기 하루 전 날이었다. 도저히 기차표를 예매하는 일을 직접 행동으로 옮기지 않고서는 바라나시에 계속 머물러 있을 것 같았기 때문에 이틀전엔가 아그라로 가는 기차표를 예매했고 역시나 바라나시에서의 마지막 밤은 아쉬웠다. 떠나기 전 날, 기차표를 미룰까 하는 생각을 잠시나마 했을 만큼. 사진 찍기 전에 이발사 아저씨와 그의 손님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양해를 먼저 구하고 사진을 찍었다. 내가 찍은 세 장의 사진 중엔 그런 듯한 느낌이 별로 없지만 뷰파인더로 보고 있자니 이발사 아저씨가 어찌나 카메라를 의식하시던지. ㅋㅋ 속으로 자꾸 웃음이 나왔었다. 일부러 그런 모습을 피해 셔..
작년 이맘때 (엔 이미 나는...바라나시에 있었지만.) 인도 여행을 준비하면서 한창 인도여행 인터넷 카페에 들락거리면서 신기했던 것들 중 하나는, 인도에 여행가서 다들 한편이상은 꼭 영화를 보는 분위기라는 거였다. 인도영화엔 대체로 영어자막도 나오나보다, 싶었는데 그건 아닐 것 같았다. 그래서, 정팅때 채팅방에 들어가 사람들에게 물어봤다. - 인도영화를 어떻게 봐요? 힌디어를 어떻게 알아듣나요? 영어자막 나오는건 아니라던데... - 힌디어 몰라도 줄거리가 단순해서 대충 다 알 수 있어요ㅋㅋ 그리고 특이한 점은 대부분이 뮤지컬 영화라는 것. 뭔가 중요한 장면이 시작되면 음악이 흘러나오면서 갑자기 등장인물들이 춤추며 노래한단다. 딱히 뮤지컬 영화라고 내세워서 제작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인도의 영화시장은 ..
역시 바라나시에서도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 일단 내가 묵었던 비쉬누의 도미토리에는 베드가 12개정도 있었는데 내가 기억하기로는 10개 정도는 한국인, 일본인 나머지 두 개는 태국, 프랑스 등. 바라나시를 마지막으로 이제 곧 한국으로 돌아가는 수석, 내가 체했던 날 손을 따 주었던 윤경언니, 미싯가루에 대해 엄청난 관심을 보였던 일본인 언니,(얼굴은 생생한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메구카페에서 나에게 'ごちそうさまでした。(잘 먹었습니다)'를 가르쳐주었던 또 다른 일본인 언니, 자전거로 인도를 여행하던 어떤 태국 청년 ... 꼴까따의 파라곤에 묵었던 그리고 메인가트 근처에서 우연히 만나 반갑게 악수했던 그리스 아저씨, 혼자서 벵갈리 토라를 돌아다니던 날, 바라나시에 오게 된 너는 정말 lucky하다고 나에..
다시, 바라나시. 참 이상하다. 사실, 바라나시에서 여행객들이 특별히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만약 좀 더 오래 머문다면 악기나 요가레슨을 받을수도 있겠지만. 바라나시에서 나는 6일간 머물렀다. 사실 3일짼가 4일째 되던날, 주위 사람들에게 오늘은 꼭 기차표를 예매할거라고 떠들어대지 않았다면 기차표 예매를 하루하루 미루다가 일주일이고 열흘이고 좀 더 오랫동안 바라나시에 머물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여행 기간이 몇달 쯤 된다면야, 애초에 자세한 루트를 짜지 않은 채로 온 의도대로, 발길따라 마음이 흘러가는대로 길을 가다가 마음에 드는 장소에 얼마든지 오래 머물수 있겠지만 나에겐 시간이 별로 없었으므로 바라나시에서 다섯밤을 지내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만 했다. 내일은 꼭 기차표 가격 좀 알아봐야지, 오늘..
어디론가 여행을 떠난다는 것 - 그 자체는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이지만, 여행지에서도 일상에서의 사소한 행위들이 반복되기 마련이다. 손톱을 깎고, 매니큐어를 새로 바른다든지, 빨래를 하거나, 바지 수선을 맡기는 것 같은. 여행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그런 행위를 하게 되는 횟수도 많아지고, 그 여행에 익숙해지는 이유 중의 하나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종종 스스로 앞머리 자르는 일도, 한나절 지나면 잊어버릴 흔한 일상이다. 한달넘는 여행기간동안 한번쯤 앞머리를 자르게 될 줄, 사실 예상하진 못했었다. 아마 예상했다면 가위를 가져왔을지도. (물론, 예상했어도 굳이 가위를 가져올 필요는 없다) 한나절 지나면 잊어버릴 것처럼 그저 덤덤하게 앞머리를 자르고 싶었지만! (좀 더 여행자 간지가 날 것 같다. ㅎㅎ) 일..
역사보다, 전통보다, 전설보다 오래된 도시 - 바라나시를 이르는 말이다. 어느날 혼자 벵갈리 토라를 돌아다니다가 만난 어떤 아저씨가 이야기해준 바라나시의 옛날옛적 전설같은 이야기는, 바라나시의 옛이름이 세 개나 된다는 것 말고는 기억이 전혀 나지 않지만 ^^; 어쨌든 바라나시는 대부분의 인도인들(힌두교도)에게 유서깊은 성지임에는 분명하다. 인도에 대해 들어온, 특히 갠지스강가의 풍경, 바로 그 풍경을 볼 수 있는 갠지스강이 있는 오래된 도시. 인도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씩은 거쳐가는 - 바라나시. 한쪽에서는 '죽은 자'들을 불태우는 연기가 끊이지 않고 다른 한편에서는 목욕하거나 빨래하는 '산 자'들의 일상이 펼쳐진다. 그 이야기를 인도에 오기 전, 책에서 읽거나 듣기만 했을 때는 참 꺼림칙하게..
바라나시에 도착한 첫날, 가짜 비쉬누 게스트하우스에서, 한참동안 눈물을 줄줄 흘리고, 그래서 콧물도 나오고 그래서 휴지를 꺼내 눈물콧물 닦아 내고... 또 눈물이 나와서 엉엉 - 그렇게 울면서 '내가 왜 울고있지?'라고 나 자신에게 반문해보았지만 마땅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계속 눈물이 나왔고, 두루마리 휴지를 술술 풀어 연신 눈물을 닦아내야했다. 첫 기차에서 내린 이후 시달림과 피로감도 한가지 이유였겠지만, 아무래도 릭샤 아저씨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가장 컸던것 같다. 비록 가짜 비쉬누 게스트하우스에 나를 데려다주긴했지만 (사실, 그 숙소가 '가짜'라고 말할순 없다. 이름은 정말 비쉬누 게스트하우스였으니까 ^^; 다만 가이드북에 나온 그 유명한 숙소가 아니었을 뿐.) 진심으로 미안해했던 아..
바라나시정션역. 간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였을까, 나는 플랫폼 사이를 왔다갔다 하며 역 밖으로 나가는 출구가 어딘지 한참이나 헤맸던것 같다. 꼴까따에서 처음 기차를 탈 때는 꽤 긴장했었지만 기차를 타고 달려오는 동안 잠을 푹 잘 수는 없었어도 어느 정도는 긴장이 누그러졌다. 그래서 기차역에서 원하는 숙소까지 별 탈없이(?) 어떻게 무사히 갈 것인가, 하는 것이 걱정스럽긴 했어도, 다른 한편으론 '어떻게든 되겠지'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피곤하고 어리버리해보였을 내 얼굴과 비교적(?) 깨끗한 내 커다란 배낭은, 광장에 즐비해있던 릭샤꾼들의 표적이었을 거다.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광장으로 나서기는 커녕 플랫폼에서부터, 그리고 그 플랫폼 사이를 잇는 통로 곳곳에서부터 어디까지 가느냐, 내가 좋은 숙..
내가 필름 카메라를 사랑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것. 여행이 끝나고 한참 후에, 잊을 뻔 했던 그 순간의 기억을 끄집어낸다. 몇년간 몸에 배인 능숙함의 결과물인지 운좋은 우연의 일치인지 모를, 행복한 프레임. 유쾌한 친구들 셋, 그 사이에 꼽사리껴서 함께 꼴리지 스트리트에 갔던 날이었다. 트램을 타고 '그냥' 꼴까따 구경을 하다가 어딘지도 모른채로 '여기좋네'하면서 내렸던 곳. 자인교 사원을 구경하고 나니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가야하나, 어떻게 해야하나... 마음이 조금 불안하던 그 때도 우린 '여행자답게' 사진을 찍었었다.ㅎㅎ 한두사람에게 길을 묻자 우리들 주변으로 모여든 십수명의 사람들. 그들 덕분에 우린 무사히 지하철을 타고 파라곤으로 돌아왔다. ^^
첫번째 도시였던 꼴까따에서 다른 곳으로 떠나는 것은, 내가 넘어서야할 높은 산처럼 느껴졌다. 낯선 여행지의 식당에서 혼자서 밥을 먹거나, 북적이는 거리에서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릭샤왈라와 1:1로 맞짱뜨거나, 마살라 향이 유난히 강한 어떤 인도 음식에 도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혼자서 열몇시간 밤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는 것은 몇주간의 인도 여행에서 언젠가 한번은 내가 꼭 풀어내야하는 미션이었다. 행선지를 결정하는 것부터, 기차표를 예매하는 것, 어두운 시간에 기차역으로 가는 것, 그리고 기차에서 내 짐을 어떻게 관리할 것이고, 화장실 갈 땐 어찌할 것이며, 외국인여자에 대한 인도남자들의 호기심가득찬 찝적댐에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이른 아침 행선지에 도착해서 어떻게 여행자거리로 가야할지... 인도에서의..
지난 겨울, 인도의 McLeod Ganj. 매스컴에서는 '다람살라'라고 불리는 그곳. (다람살라 중에서도 달라이 라마 망명정부가 있는 곳은 정확히, 맥그로드간지이다.) 8살 때 티벳에서 인도로 넘어온 이후로, 17살이 된 지금까지 티벳에 남은 부모님 얼굴을 보지 못했다는 고등학생, Tibetan leader였던 아버지가 어릴 때 중국에 의해 돌아가셨다는, 티벳이 독립하면 다시 티벳으로 돌아가고 싶다던 어떤 친구, 설날 아침, 티벳의 가족들에게 새해 인사를 하기 위해 전화샵앞에 길게 줄서있던 사람들... 언젠가 티벳에 여행가게 되면, 티벳에 있는 자기 가족들에게 미리 연락해놓을 테니 라싸에 있는 자기 집에 가서 머무라고 이야기했던 친구... 그의 가족들은 지금 무사할까. 외부와의 단절 때문에 인터넷뉴스 외..
47번 방에서 이틀밤을 보내고, E언니가 떠나면서 빈침대가 생겨 도미토리로 옮겼다. 밤에 잠을 자는 때말고는 싱글룸에서 혼자 시간을 보낼일이 거의 없긴 했지만 아무래도 그 방은 좀 우울했다. 게다가 그 방을 본 언니들이 '여기에도 방이 있는줄 몰랐다'라고 말했을만큼 1층의 구석진 곳에 있었다. 또 언니들이 혼자 여행할 때는 싱글룸보다 도미토리가 더 좋다고 권해주기도 했다. 내가 들어간 방은 침대가 7개 있었는데, 나를 포함한 한국인 여자 넷, 일본인 남자 셋이 머물고 있었다. 3일간 그 방에 머무는 동안, 나는 한국인 여자들보다도 일본인 남자들과 더 가까워졌다. 그 사람들이 좀 다들 독특하고 재밌어서 이기도 했고... 한국인 여자 둘은, 처음 인사하고 몇마디 나눌 땐 괜찮았는데 그 이후로는 줄곧 나를 좀..
(꼴까따에서의 첫 날 이후로는, 시간적 순서가 아닌, 사람들과의 에피소드 위주로 정리...) 다시 꼴까따에 가게 된다면, 가장 먼저, Paragon Hotel로 가서 도미토리의 빈 침대가 있는지 물어볼거다. 그곳에서 여러 여행자들과 처음 만났고 게다가 난 그 사람들이 좋았고, 앞으로 혼자서 여기저기 돌아다닐 용기와 자신감을 얻은 곳이니까. 그 곳이 첫번째 숙소라 그 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인도여행 기간 중 묵었던 숙소 중 가장 자유롭고 독특한 분위기의 숙소이기도 했다. 도미토리 앞에서 여행자들이 모여앉아 꽤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맥주를 마시거나 기타치고 노랠 불러도 심하게 제재를 하지 않았다. (조용한 숙소를 원하는 이들에겐 분명 짜증나는 점이겠지만) 꼴까따에만, 그것도 파라곤에서..
거리로 나섰을 때가 거의 2시.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먼저 먹은 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Melissa가, 가보고 싶은데 있냐고 나에게 물어왔지만 나는 정말 아무런 생각도 계획도 없었으므로 ㅋㅋ 그냥 내키는대로 돌아다니자고 했다. Sudder st.주변을 돌아다니다가 만난 한 미국인 아저씨가 우리에게 한가지 제안을 했다. 그 아저씨도 심심하던 참이었나본데, 지하철을 타고 아무 숫자나 찍은 후 그 숫자만큼의 구간을 이동한 후 무작정 내려보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린 그렇게 하기로 하고 Park st.역에서 지하철을 탔다. 처음 타본 꼴까따의 지하철. 생각보단 괜찮았다. 좀 더 지저분하다는 것만 빼면 우리나라의 국철 수준과 비슷한것 같았다. 나는 숫자3을 찍었고 우린 세 정거장 후에 내렸다.(그 미국인 아저..
요즘 인도여행기를 쓰고 있다. 예전 베트남 여행 때는 고작 열흘 뿐이었는데도 여행하는 동안 일기를 쓰지 못했다. 아니 쓰지 않았다. 별로 필요성을 못느꼈던 것 같다. 적은 것이라곤 하루동안의 지출내역 정도 였는데 그나마도 매일매일 꼼꼼하게 쓰지 않았었다. 그런데 돌아가는 날을 이틀앞두고 카메라를 잃어버렸고, 그때까지 찍은 사진도 몽땅 날아가버렸다. 남은 이틀간 일회용 카메라 두 개로 찍은 사진 몇장이 그 여행의 기록의 전부가 되었다. 물론 아무리 기록을 열심히 한다고 해도 머릿속에, 마음속에 남은 것보다 생생할 수는 없겠지만, 모든 것들을 낱낱이 기억하고 있을 수는 없더라도, 그 때의 사진 몇장이나 혹은 기차표나 영수증을 보면 그것과 관련된 기억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시 떠오른다. 그런데 그런 기억의..
쑤완나품 공항에서 인도 항공사인 Jet Airways 비행기를 탔다. 서비스 정신 같은 건 아예 없는 것 같다는(그야말로 인도식ㅋ) Indian Airlines와는 달리 Jet Airways는 국제항공사 10위권 들었을 정도로 좋다는 얘기를 들어서 은근 기대됐다. (실제로도 좋았다. 기내식, 엔터테인먼트...) 방콕까지 타이항공으로 올 때는 승객 중 한국인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기내에 들어서는 순간 움찔하고 놀랐던 것은, 70~80%정도가 인도인이었다는 점. ㅎㅎ (인도 항공사이니까 사실 당연한거다 ^^;) 같은 아시안임에도 불구하고 동남아 사람들과는 달리 나와 확연히 다른 얼굴을 가진 그들 사이에 있으니 정말 낯선 느낌이 들었다. 유럽인, 동양인 여행자들이 몇몇 있긴 했지만 기내에서 거의 뒤쪽 좌석에 ..
가이드북을 읽으며 루트를 그려보거나, 인터넷으로 산 침낭에 쏙 들어가 누워볼 때면 여행 떠나기 전 특유의 흥분과 설레임으로 마음이 한껏 부풀어올랐다. 그러다가도 인도여행 카페 게시판에서 혼자 여행은 말리고 싶다는 글을 발견하기라도 하면 부푼 마음이 순식간에 뻥! 터져버리고 눈앞이 캄캄해지곤했다. 출발 전 몇일간, 하루에도 여러번씩 그런 싸인곡선을 오르내렸다. 이윽고 하루 전날이 되어, 엄마와 함께 (인도에서 자동로밍이 되는 기종의) 새 핸드폰을 사러 돌아다니고, 동생 방 가득히 물건들을 늘어놓고 짐을 싸면서 그런 기복은 점차 희미해졌다. 그날 밤, 아빠가 자꾸만 방문을 열어보시면서 일찍 자라고 재촉하셨지만 난 잘 수가 없었다. 배낭을 싸다보니 부족한 것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여지없이 드..
내 친구 S와 함께 여행을 가자고 이야기했던 것은 이미 여러해 전의 일이다. 2004년 초에 함께 남이섬에 다녀온 이후라는 건 확실하지만 언제부터 함께 여행을 가기로 약속한것인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어디로 여행을 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바이칼 호수를 이야기했던 적도 있고 태국의 치앙마이 이야기를 한 적도 있는 것 같은데, 어쨌거나 인도, 네팔로 귀결되었고 시기는 이번 겨울이었다. 10월부터 슬슬 준비하기 시작해 11월 초에 항공권을 결제했고, 비자를 발급받았다. 여행을 준비하는 동안 '다음 여행 때는 꼭 혼자 떠나야지'라고 생각은 해봤지만 사실, 당장 이번 여행 때 친구와 둘이 떠나게 될 것에 대해서는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일정이 겹칠지도 모른다는 아주 약간의 불안감은 있었지만 만약 그렇게 된..
첫번째 인도여행 2008.1.11~2.13 인천-방콕-꼴까따-바라나시-아그라-푸쉬카르-우다이뿌르-델리-맥그로드간즈(다람살라)-델리-인천 인도에서 돌아온지 일주일이 지났다.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 처음 외출을 나갔던 날은, 집 근처에서 2500원짜리 테이크아웃 라떼를 마셨는데, '이 돈이면, 100루피. 라씨 10잔 아니면 뗌뚝 두그릇 사먹을 수 있겠다. 도미토리 하루 숙박비를 내고도 남는 돈이네' 라고 나도 모르게 꼽아보고 있었다. 몸은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직 마음은 돌아오지 못했달까. 이제 부산으로 내려갈 기차표를 예약하고, 지인들과 만나 그간 쌓인 수다를 풀고, 지하철 가판대에서 즐겨보는 주간지를 오랜만에 사서 읽으면서 이제서야 2008년 2월, 서울 혹은 부산에서 살아가는 대학원생으로,나의 일상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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