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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dinary scene

첫만남의 기억

갈매나무 2018. 4. 2. 13:35

전 남친과 헤어진 후 울고불고 했던 며칠이 지나고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전공의 4년차가 되면서 약간 여유가 생겼으니 아침 6시반에 시작하는 주 5일 영어회화 수업도 신청했다.

마침 3월 초쯤 친구가 내게 소개팅을 제안했다. 

소개팅으로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는 것에 대해 이미 깊은 회의를 갖고 있었지만 하겠다고 했다. 

역시 환기 차원에서.


얼마 안되어 얼굴도 모르는 소개팅남이 카톡으로 말을 걸어왔다. 

그 때 약속을 잡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그러다가 영어회화 수업을 다니기 시작한지 딱 2주가 지나고,

정말 잠을 전혀 잘 수 없을 정도로 밤새 기침을 계속 해대고 열이 오르더니만, 

호흡기내과 외래에 가서 찍은 흉부엑스레이엔 좌하엽 폐렴이..

젊고 기저질환 없는 건강한 30대이니 입원할 필요는 없었고, 항생제를 며칠 먹었다.

친구가 소개팅남에게 연락했는지, 소개팅남이 안부를 물어왔다. 소식 들었다고..

컨디션이 안좋으면 그냥 차 한잔 마셔도 된다고 했던것 같다. 

그 정도는 아니라서 괜찮다고 했고, 대신 우리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만나 식사하기로 했다.


3월 28일, 우리집에서 걸어서 10분이 채 안걸리는 곳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동생이 예쁘게 좀 꾸미고 가라고 핀잔을 주었던 기억이 난다. 

청바지에 잔무늬가 있는 네이비 블라우스, 트렌치코트를 입고 집을 나섰다.

약속한 7시를 3-4분 넘겨 도착했는데 아직 그는 오지 않았다. 

예약된 테이블에 앉아서 몇분 기다리고 있으니 양복을 입은 내 또래의 남자가 내 쪽으로 걸어왔다. 

금요일 저녁이라 길이 좀 막혔다고 했다. 살짝 차가운 인상이었지만 웃는 얼굴이 괜찮았다. 

물고기와 산호를 키우는 취미를 가진 남자. 

그는 2차로 간 카페에서도 그 쪽으로는 전혀 문외한인 내게 줄기차게 물고기 이야기를 해댔지만 

이상하게도 재미있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그게 참 신기했다. 

다음날 나는 전공의 연수강좌를 들으러 갔고 간간히 그와 카톡을 주고 받았다.

그 다음날 KU시네마테크에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함께 봤다. 

남색 후드에 하늘색 비니를 쓰고 나온 그의 모습을 보며 좀 귀엽다고 생각했다.

4년전 이맘때였다.


나는 지금 그 남자와 함께 산다. 내가 사랑하는 내 짝꿍. 

언젠가 이런 이야기들도 기억이 희미해질까봐 적어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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