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로 정신과 실습이 끝났다. 이로서 메이져과 실습은 끝난 거다. (메이져과 :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정신과) 아직 내가 사고친 실수를 수습해야할 것이 여전히 남아있어 마음 한구석이 살짝 어둡긴 하지만-_-a 어쨌든 끝났다. 36주간 실습을 하는 동안, 이건 아니라고, 이건 절대 못할 것 같다고 배제시킨 과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강력하게 구미가 당기는 과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내가 염두에 두고 있는 과는 아직 실습을 돌지도 않았고, 필수도 아니다) 내과보다는 소아과가, 외과보다는 산부인과가 재미있었다. 외과나 산부인과가 의외로 땡길지도 모른다고 내심 기대했었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웬걸! 기대는 커녕 오직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정신과가 급 땡긴다. 정신과 실습을 하면서 좋았던 몇..
팔순 할아버지와 그의 소 - 40년을 함께한 동반자. 친구라고 하기엔 함께한 시간과 그 끈끈함을 표현하기에 좀 부족할지도 모르겠다. 아직 여태껏 살아온 인생의 시간이 30년도(?) 안되는 나로서는 그 오랜시간의 관계를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할머니는 입버릇처럼 팔자타령에, 소를 팔라고 이야기하지만, 40년간 함께해온 소를 위해 농약을 치지 않고, 사료 대신 먹일 꼴을 부지런히 베어 소죽을 끓이는 할아버지. 하루도 빠짐없이 들에 나가 일하는 할아버지를 태우고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걸어가던 소. 오랜 시간 함께하면서 어느새 서로가 서로를 닮아왔을런지도... 영화는 그들의 마지막 1년을 담았다. 누가봐도 늙고 지쳐보이는 기색이 역력해보이던 소가 마침내 떠나던 날, 좋은 곳으로 가라는 할아버지의 이야기, 나도 ..
어린 시절에는 한 해의 마지막날과 새해 첫날에는 늘 새로운 결심에 대한 내용을 일기에 썼다. 특별히 일기 쓸 거리가 없어서일수도 있겠지만, 그렇게라도 새해 첫 날을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맞이하지 않았을까, 어린 시절의 나는.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한 해의 마지막날이나 새해 첫날이나, 그 사이에 명확한 경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어김없이(감사하게도) 찾아와주는 또다른 하루일 뿐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 사실은 그렇다. 1999년 마지막날, 새로운 밀레니엄이 밝아온다며 전세계가 들썩였다. 그 어떤 새해맞이보다도 시끌벅적했던 그 때.따지고보면 ‘진짜’밀레니엄은 2001년부터 시작인데^^; 새 천년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맞이하고 싶은 사람들의 욕망 때문에 때이른 밀레니엄 맞이를 하게 된 게 아니었을까. 아무..
1 지난 토요일. 오래전부터 생각했던 일이긴 했지만 금정산 아래에서 범어사로 가는 버스를 타면서도 특별한 기대감이나 설레임같은 것은 거의 없었다. (하긴 인도로 가던 날도 무덤덤했는데 하물며...ㅋ) 범어사에 처음 온 것은 아니었지만 하룻밤 묵을 생각으로 일주문을 지나니 느낌이 좀 달랐다. 사천문을 지나고 대웅전 앞마당도 지나, 일정 시작 시간보다 약간 늦었으므로 빠른 걸음으로... 범어사 깊숙이 들어앉은 휴휴정사로 찾아갔다. 다행히 아직 도착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고, 나도 법복을 받아 갈아입고 큰 방에 앉았다. 웅산스님으로부터 사찰예절을 배우는 것으로 일정이 시작되었다. 단전에 두 손을 모으는 '차수'라든지, '합장' '반배' '고두배' 등의 예절과, 예식을 할 때 부르는 기본적인 노래 - '삼귀의..
보임&문희 - 이들을 만나는 건 거의 습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주말을 맞아 2박3일로 서울에 가거나 그보다 좀 더 길게 가거나, 어쨌든 나는 이들에게 서울로 간다는 사실을 알리고 굳이 만나자는 말을 누가 하지 않아도 '내가 서울에 가면' '셋이서' '만난다' 물론 시간맞추기 어려워서 둘이서 만날 때도 있고, 보임언니와 문희는 서로 회사가 지척에 있어 나보다 더 자주 만나긴 하지만. (그래서 나더러 졸업하면 둘의 회사와 가까운 강북삼성병원으로 오라고 난리.) 셋은 어찌보면 참 다른데 어찌보면 참 닮기도 했다. 나는 철없던 시절에 보임언니와 노천 날개 위에서 수없이 데이트를 했고, 우연히 언니의 비밀을 알게된 적이 있다. 문희에게 나는 '카리스마 넘치는' 선배였고 (지금은 그런 환상이 다 깨졌다네♪) 문희..
서울에 올라갈 때면 올라가는 기차 안에서부터 친구들과 연락해 약속을 잡기 일쑤였는데 이번엔 서울가기 며칠 전에 동생들과 약속을 잡았다. 물론 집에서 셋이 밥을 먹은 적이야 여러번 있지만 진지한 대화가 필요한 시기라는 걸 떠나서 일단 내가 그러고싶어서 내가 먼저 동생들에게 문자를 돌렸다. 수다의 범위는 여기저기를 넘나들었지만 우리의 메인 이슈는 일관되게 막내의 진로에 관한 것이었다. 믿어주어야할지 아니면 뜯어말려야할지 가족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것 같다. 이래저래 걱정이지만 한편으론 아직 말그대로 새파랗게 어린 나이이니만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스스로 한 번 부딪혀보고 직접 깨닫는게 좋겠다는게 내 생각이다. 물론 부모님이 (어쩌면 나에게도 여파가 미치려나? ㅎㅎ) 감당하셔야할 경제적 정신적 부담..
여행 중 만난 사람들 몇몇은 Seoul을 Seo-ul이 아니라 Se-oul이라고 발음해서 (씨올~씨울) 처음에 내가 잘 못 알아들었던 생각이 난다. 물론 이건 그냥 갑자기 생각난 사실이고-_- 이제서야 돌이켜 생각해보니, 지난 학기가 막바지로 갈 수록 나는 '서울 가고 싶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던 것 같다. 기말고사 기간 중에도, 공부 많이 했냐, 시험 잘 봤냐는 질문들에 대한 대답도 역시 '서울 가고 싶어'였다. 방학 같지도 않은 방학이 시작된지 8일이 지난 오늘 나는 서울에 왔다. 생각해보니 서울에 온 지 그렇게 오래된 것도 아니었다. 10월 말에 왔으니 한 달 반 정도. 그런데 난 그 한 달 반이 서너달 쯤으로 느껴졌었다. 지난 학기말에는 너무 지쳤고 바닥을 쳤기 때문이겠지, 아마도. 처음으로..
인생은 짧아... 어떻게 살아야 잘 살아가는 걸까? 친구가 책상에 올려둔 쪽지에 적혀있던 짤막한 문장. 한창 하고 있던 일을 멈추고 잠시 생각해봤다. 예전에는 인생을 잘 살기 위해서는 일단 뚜렷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고 오랫동안 생각해왔었는데 이젠 달라졌다. 그게 필수조건은 아닌것 같다. 잘 사는 것이라... 인생의 모든 순간순간이 그럴 수는 없겠지만 인생의 많은 부분이 가슴벅찬 순간들로 채워질수록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삶에 가까이 다가가는게 아닐까 싶다. 다만 자신을 가슴벅차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는 것이 쉽지 않을 뿐이다. 그걸 찾는 사람은 행운이고 영영 찾지 못한 채 대부분의 인생을 보내는 사람도 있을거다. 다시 생각해보면 그것을 찾아나가는게 인생의 목적이자, 그 과정 자체가 인생인지도 모르겠..
1 일단 엄마 뱃속을 빠져나와 첫 공기를 들이마시고 첫 울음을 터뜨리고 나면 그 이후의 일은 신기하게도 밥(젖)잘 먹고 잠 잘 자면, 나무가 쑥쑥 자라듯 아이들도 그렇게 다들 건강하게 자라나는 줄 알았는데 세상에. 내가 키 50cm, 체중 3kg에, 뇌는 물론 폐, 심장, 소화관이 각각 제 위치에 지극히 정상적인 상태로 태어나 지금껏 크게 아팠던 적 없이 비교적 건강하게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것이 새삼 놀라울 정도로, 아픈 아이들이 많다, 대학병원엔. 특히, 신생아중환자실에는 조그맣고 아픈 아기들이 많다. 태어날 때부터 소화관이 막힌 아기, 폐가 덜 만들어져서 나온 아이 등 - 물론 그런 아이들 대부분은 미숙아들이고. 태어나자마자 엄마를 알아보기도 전에 중환자실로 오고, 그 조그마한 가슴과 배를 째고 수술..
소아청소년과 실습 4주째. 아픈 아기들이라도 넘 넘 이쁘지만, 그래서 이래저래 많은걸 느끼고 생각하게 되지만, 바쁘다! 안 바쁜것 같은데 은근히 빡세다! 추석 기차표도 반환해야할 지경. 제대로된 포스팅 한번 하고 싶어라. (다음 인도여행기 포스팅은 미완성인채로 며칠째 비공개 상태.-_ㅠ) 바야흐로 천고센비의 계절... 인지라 높아지는 식욕-_-에도 불구하고, 저녁조깅을 꾸역꾸역 해낸다는 것은 스스로 칭찬할만한 일. 아니, 사실 그나마 다행.-ㅅ- 또 러닝화 끈을 질끈매고 나가보자.
2학년 말이나, 3학년 초가 되면 은행직원들이 강의실에 와서 마이너스 통장을 홍보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마통을 '뚫은' 이들은 카메라나 노트북을 사기도 하고, 여행을 떠나거나, 더러 유흥비로 야금야금 쓰기도 한단다. 2학년 2학기 말이 되자 예상했던 대로 어느날엔가 모 은행 직원이 강의실을 찾아와 신청서 양식을 돌렸고 수십명이 '마통을 뚫었다'. 굳이 당장 필요가 없는 사람들도 일단 신청하는 분위기였던터라 나도 잠시 마음이 동해 신청서를 한장 받아놓았지만 그냥 서랍에 넣어두었다. 괜히 만들어놓았다가 쓸데없이 돈을 쓰게 될 것 같아서였다. 짧은 이번 방학, 지난주 잠시 머물렀던 서울에서 지인들을 만났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친구는 졸업후 '고학력 비정규직 종사자'가 될 것을 알고도 그저 공부가 좋아..
Van Gogh - 자신의 귀를 스스로 잘라낸 모습의 자화상으로 봤을 때는 좀 '똘끼'가 있는 독특한 사람이었을거라고 생각은 했으나 (너무 무식한가;;) ... 빈센트 반 고흐라는 화가가의 삶이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것이 없었다고 할 수 있겠다. 지난 2월, 반고흐전을 보러 갔을 때 느낀건, 그리 길지 않았던 이 사람의 생애에서 행복감을 느꼈던 시기는 거의 없고 온갖 고통과 괴로움으로 점철된 시간들이 많았다는것. 그 가운데 그림을 그리는 행위 자체만이 그가 삶을 살아가는 큰 이유 혹은 고통을 이겨내는 수단이 아니었을까. 즉, 구원의 통로. 정작 세상에 살아서 그림을 그리는 시간동안 불행한 삶을 살았지만 (죽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인생의 고통이란 살아있는 그 자체다") 그가 세상을 떠난..
비오는 날이 싫다. 바지도 젖고 신발도 잘 젖는데다가 우산을 들고 다녀야하는 한 손이 자유롭지 못하니까. 최근 들어 비오는 날이 조금 좋아진 유일한 한가지는, 내 방 창문에 타닥타닥 빗방울 튀는 소리를 들으며 따뜻한 커피를 마실수 있는 지금같은 오후의 시간. 어제 오후,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 오후, 나는 갑자기 우울해졌었다. 핸드폰을 고치고 서점에 들렀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 충무 교차로 앞 횡단보도 앞에 서서 멍하니 흐린 하늘을 바라보았다. 소금기가 스민 습한 공기가 코끝에 느껴진다. 문득 2008년 6월 내가 이 곳에 서 있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 참으로 오랜만에. 2008년 6월에 내가 이 곳에 서 있을 거라고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초점은 흐리고 표정이 없었다. 고등학교를 마칠 ..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감 이라는 말 밖에는 요즘 나의 심리상태를 표현할 수 없었다. 물론 그것은 외로움으로 부터 시작되었지만. 사춘기때조차도 한번 해보지 않았던, '지금 당장 내가 죽으면 진심으로 울어줄 사람이 몇명이나 될까?' 생각을 하면서, 주변인물들을 죽 떠올려보며 손가락으로 꼽아볼 지경이 될만큼 회의감은 극심했다. 지난주였나, 지지난주 쯤엔가 부터 기현오빠가 '한잔해야지'를 농담처럼 말하기 시작하더니 지난 금요일 급기야 이 커플과 함께 한 잔 하러 갔다. 국제시장 똥집이모네의 존재를 우리에게 알려준 DK는 비록 눈물을 머금고 처가댁으로 떠나갔으나.ㅎㅎ 왜 그랬을까, 이 날 나는 die됐다. 마신 술의 양과 취하는 정도가 항상 비례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어쨌든 나는 2002년 내 생일 이후 처음으로..
1 4호선 한성대입구역 6번출구로 나갔다. 어제는 거의 하루종일 꽤 쌀쌀해서 덜덜 떨었는데, 오늘은 날씨가 화창해서 기분이 좋았다. 북쪽으로 뻗은 4호선 도로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1997년 오원 장승업 탄생100주년 기념전시회 이후 11년만이다! 간송미술관에 찾아가는 것이. 그때는 4호선 도로 중앙에 플라타너스가 줄지어 서 있는, 그저 한산한 동네라고만 느꼈었는데 꽤 많이 변해있었다. 하긴,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니. 성북동 파출소를 지나고 2,30미터를 좀 더 걸으니 간송미술관 표지가 보인다. 드디어. 그 곳. 고등학교 때 세 번, 혼자 찾아와 둘러보고 갔던 곳. 별로 미술관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곳에, 어느 시골집처럼 숲으로 둘러싸인, 꽤 오랜 역사를 가진 간송미술관. 봄, 가을, 2주씩 ..
마냥 어리게만 봐온 막내동생이 내 걱정을 해 줄 만큼, 부쩍 커버렸다. 태어나던 날이 아직도 생생한데, 녀석은 이제 반올림하면 스무살이 되는 나이가 되었다. 아직 다리털은 거의 없는 것 같지만 제법 청년다운 테가 난다. (나는 반올림하면 서른이다 OTL) 오늘 저녁 로티보이 BUN을 먹으러 함께 걷다가, 광우병 소고기 수입 문제도 그렇지만 의료보험 민영화, 수도 민영화 때문에 이명박이 싫다는 동생의 이야기에 깜짝 놀랐고,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 국어와 국사라는 이야기에 또 놀랐다. 비록 공부에는 관심과 흥미가 없어보이고 컴퓨터 게임에 열광하는 녀석이지만, 그래도 부모님이나 누나들이 지금보다 조금은 덜 걱정해도 되겠구나, 싶었다. 한국사회에서 사교육비에 대한 지출을 높이는데 한몫, 아니 큰몫을 하고 있는 동..
이 뮤직비디오를 볼 때 마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 어쩔때는 숨이 멎을 듯이 가슴이 벅차오르는 느낌. 지난 여행이 남긴 후유증 중 한 가지. 후유증이 다만 후유증으로 끝날 것 같지 않아 살짝 걱정스럽다. 학기 초만 해도 지난 여행의 여운이 지독스러울 정도로 가시질 않았다. 이제 일상으로 완전히 돌아와, 임상실습을 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 잊혀지나 싶었는데, 여전히. 그것은 내가 마시는 공기의 일부가 되어, 뚜렷하진 않지만 은근히, 조금씩, 앞으로도 쭉- 내 그리움의 대상이 될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아- 설명하기가 어렵다. 내 언어 표현의 한계가 최근2-3년사이 부쩍 크게 다가온다ㅠㅠ) 아무튼 이 노래, 정말 좋다. 가사도 와닿고 뮤직비디오도 참. 내가 그리는 그런 여행, 딱 그거다. 마치 ..
우리집에서 나와 함께 서식할 첫번째 생명체를 데리고 왔다. 단돈 3000원에. 오랫동안 미뤄오던 일인데, (이유는, 꽃집들르는 걸 까먹어서. 그리고 말려죽일까봐.) 오늘 잠깐 남포동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사왔다. 고양이는 아무래도 털+X때문에 자신이 없어서, (내가 애완동물을 고려했었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것이다!) 그 대신 털 날릴 염려가 없는 식물을 선택했다. 응달에서도 잘 자라고, 자주 물을 주지 않아도 잘 자라는 종류 중에서 골랐다. 꽃집 아줌마가 말해준 이름은 '페페'. 기념할 만한 일이라서 사진을 찍었다. (간만에 좀 한가하다;) 이 녀석은 척박한 내 방에서 잘 생존할수 있을까? 일주일에 한 번씩 물을 듬뿍 주어야겠다.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잘 보살필 수 있을지 나도 참 궁금하다. 가을되면 ..
지민이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오! 그러고보니 친구의 결혼식에 갔던 것은 처음이다. 수현이 결혼식 때는 시험 때문에 못 갔었고.) 글쎄, 그 이유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결혼식에 모인 친구들에게서 세월이 느껴졌다. 뭐랄까, 이제 인생의 대소사에 대해 논할 그런 나이에 접어든것 같다랄까. 사람이 나이를 먹고 결혼을 하고 부모가 되고 아이를 키우고 함께 늙어가는 그런 인생의 일들에 대해서 말이다. 원래의 성격대로 무덤덤해보이던 내 친구와 기쁜만큼 잔뜩 긴장되어보이던 그의 신랑 - 그 둘을 보면서 그다지 부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마냥 마음이 즐겁지만은 않았다. '세월이 느껴져서' 였을까. 이제 마냥 어린아이처럼 살아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그런 와중에도 내일,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날 친구..
2주 연속 월요일이 휴일이다 보니 5월들어 두번째 긴 주말을 보내고 있다. 첫번째 긴 주말에는 그저 푹 쉬고, 공부도 하며 보냈는데 이번 주말은 그저 푹 쉬어지지도, 공부에 집중하지도 못하고 있다. 일찍 일어났는데도 집에서 밍기적거리다가 학교로 가는 길. 전국적으로 흐리고 비 오는 곳도 있다던데 오늘 부산의 하늘은 유난히도 파아랗고 구름은 그만큼 하아얗고 얼마전까지도 새순이 돋아나 있던것 같은 가로수는 초록색이 짙어져 있었다. 그렇게도 계절의 색이 뚜렷한 오늘인데 나는 문득, 외 롭 다 . 파아란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며 횡단보도를 건너다보니 더욱 그 랬 다 . 잘 견디다가, 아니, 외로움 혹은 고독감 류의 것들에 아주 익숙해져서 이제 그걸 아예 즐기는 수준이 되었나, 싶다가도 이렇게 종종 견딜수 없이 외..
고등학교 3년은 그리 괴롭지 않았다. 새벽에 집을 나서 별보며 집으로 돌아오던 매일매일이 쉽지 않았는데도 학교가는게 좋았다. 방학이 길어지면 학교에 가지 않는 날들이 이내 지겨워졌고 졸업하고도 몇년간은 네모난 교실에서 아둥바둥거리던 나날들이 이따금씩 그리워지곤했다. 지금은, 그다지 괴롭지는 않은데... 그나마 좀 여유가 있는 요즘 돌이켜 생각해보건대, 네모난 강의실에서 130여명이, 그것도 고등학교 때처럼 고만고만한 130명이 아니라, 전공, 나이를 비롯 지난 삶의 배경이 다양한 130여명이 모여 매일 부딪히는 이 생활은, 사람을 퇴화시키는 것 같다. 고차원적으로 사고하는 방법을 나도 모르는 사이 점차 잊어버리고 있는 느낌. 원래의 (이게 원래 모습인지도 모르겠다만) 모습을 잃어가고, 서로를 너무 가까이..
지난 겨울, 인도의 McLeod Ganj. 매스컴에서는 '다람살라'라고 불리는 그곳. (다람살라 중에서도 달라이 라마 망명정부가 있는 곳은 정확히, 맥그로드간지이다.) 8살 때 티벳에서 인도로 넘어온 이후로, 17살이 된 지금까지 티벳에 남은 부모님 얼굴을 보지 못했다는 고등학생, Tibetan leader였던 아버지가 어릴 때 중국에 의해 돌아가셨다는, 티벳이 독립하면 다시 티벳으로 돌아가고 싶다던 어떤 친구, 설날 아침, 티벳의 가족들에게 새해 인사를 하기 위해 전화샵앞에 길게 줄서있던 사람들... 언젠가 티벳에 여행가게 되면, 티벳에 있는 자기 가족들에게 미리 연락해놓을 테니 라싸에 있는 자기 집에 가서 머무라고 이야기했던 친구... 그의 가족들은 지금 무사할까. 외부와의 단절 때문에 인터넷뉴스 외..
요즘 살찌는게 몸으로 느껴져서-_-; 지난주에 몇달만에 조깅을 좀 해봤는데, 어두워지면 학교운동장이 위험할수 있어서 못하고, 비오면 또 못하고... 그래서 예전에 꽤나 효과를 봤던 15분 순환체조를 다시...ㅎㅎ 달릴 때만큼의 상쾌함 따위는 없겠지만. 주의사항 : 한 항목은 모두 30초씩만. 10개 세트를 3번 반복하면 총 타임이 15분이 된다. * 시작 전 : 충분한 스트레칭 1. 점프하며 팔다리 털기 (유산소) 2. 팔굽혀펴기 (무산소) 3. 제자리 달리기 (유산소) - 무릎을 높이. 본인 능력의 70% 4. 스쿼드 (무산소) : 다리를 어깨 넓이로 벌리고 팔은 팔짱. 다리를 천천히 굽혀 허벅지가 땅과 수평. 다시 천천히 올림. 허리 곧게 펴기. 5. 다리 들어올려 걷기. 허벅지가 가슴에. (유산소)..
요즘 인도여행기를 쓰고 있다. 예전 베트남 여행 때는 고작 열흘 뿐이었는데도 여행하는 동안 일기를 쓰지 못했다. 아니 쓰지 않았다. 별로 필요성을 못느꼈던 것 같다. 적은 것이라곤 하루동안의 지출내역 정도 였는데 그나마도 매일매일 꼼꼼하게 쓰지 않았었다. 그런데 돌아가는 날을 이틀앞두고 카메라를 잃어버렸고, 그때까지 찍은 사진도 몽땅 날아가버렸다. 남은 이틀간 일회용 카메라 두 개로 찍은 사진 몇장이 그 여행의 기록의 전부가 되었다. 물론 아무리 기록을 열심히 한다고 해도 머릿속에, 마음속에 남은 것보다 생생할 수는 없겠지만, 모든 것들을 낱낱이 기억하고 있을 수는 없더라도, 그 때의 사진 몇장이나 혹은 기차표나 영수증을 보면 그것과 관련된 기억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시 떠오른다. 그런데 그런 기억의..
지난 학기가 거의 끝나갈 때 즈음 대학원에서 공부를 시작한지 벌써 '2년이나' 지났다는 걸 새삼 깨달았음과 동시에, 지난 2년과는 좀 다른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학기를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사실 굳이 스스로 다짐하지 않아도, '3학년'이라는 말 자체가 가지는 무게감 때문에라도, 자연히 달라진 모습으로 시작하게 되지않을까 기대했다. 인도에서 돌아온 바로 그 주 주말에 태안에서 기름유출사건에 의한 건강영향 실태조사에 참여했다. 그 사건과 관련해 매스컴에서 접해오던 것 이면의 여러가지를 느끼고 생각하게 된 한편, 내 개인적으로는, 나의 능력으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 여러 사람들이 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데에 내 몫을 찾고 그걸 다해내는 사람이 되고싶다는 -애초에 이쪽 대학원..
- Total
- Today
- Yesterday
- 갠지스강
- 브로콜리 너마저
- Kolkata
- 꼴까따
- 임신
- 열매
- 혼자 떠난 여행
- 동영상
- 영화
- 여행
- 인턴
- 사회역학
- 사진전
- 출산
- pentax me-super
- Pentax K200D
- 추천음악
- social epidemiology
- 친구
- nikon coolpix p4
- 의사
- 전시회
- 사진
- Varanasi
- 바라나시
- 직업환경의학
- 인도여행
- 인도
- Agfacolor 200
- 기억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