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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dinary scene

마이너스통장

갈매나무 2008. 8. 15. 10:52

2학년 말이나, 3학년 초가 되면 은행직원들이 강의실에 와서 마이너스 통장을 홍보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마통을 '뚫은' 이들은 카메라나 노트북을 사기도 하고,
여행을 떠나거나, 더러 유흥비로 야금야금 쓰기도 한단다.  

2학년 2학기 말이 되자 예상했던 대로
어느날엔가 모 은행 직원이 강의실을 찾아와 신청서 양식을 돌렸고 수십명이 '마통을 뚫었다'.
굳이 당장 필요가 없는 사람들도 일단 신청하는 분위기였던터라
나도 잠시 마음이 동해 신청서를 한장 받아놓았지만 그냥 서랍에 넣어두었다.
괜히 만들어놓았다가 쓸데없이 돈을 쓰게 될 것 같아서였다.

짧은 이번 방학, 지난주 잠시 머물렀던 서울에서 지인들을 만났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친구는 졸업후 '고학력 비정규직 종사자'가 될 것을 알고도 그저 공부가 좋아 대학원에 왔노라 했다.
어떤 선배는 지금의 소득수준으로 앞으로도 한국에서 살 수 있을지, 이민가야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했다.
문득, 현재 경제적 생산능력이 전혀 없는, '노동하지 않는' 학생신분인 의대생들이
조건없이 돈을 갖다 쓸수 있는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할 수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물론 나도 마음만 있다면 신청서 한 장 써넣고 최대 2천만원인가까지 쓸 수 있는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수 있었다.
직업이 있는 사람도 여간해서는 은행에서 대출받기가 그렇게 힘들다던데.
단지 내가 '가까운 미래에 전문직 종사자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별 어려움없이'
은행 돈을 빌려 쓸 수 있다는 것, 이상한 일이다. 이건 분명 잘못되었다.

그땐 몰랐다.
몇달 전 은행 직원들이 마이너스 통장에 대해 설명해주면서 신청서를 나눠주던 그 때
선배들이 그랬듯 우리에게도 찾아온 그들이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당연스러웠을 뿐이었다.
몇 개월이 지난 이제서야 그 당연스러운 사실이 번쩍 번갯불치듯 떠올라 나도 모르게 몸서리쳤다.
이런 식으로 뒤늦은 반응을 보이다가 결국엔 돌이킬수 없을만큼 둔감해지는 건 아닌지.

모든 사회구성원들이 행복해지기 위한 수단으로 시작된 자본주의였고,
그래서 누구든 그저 열심히 일하면 돈을 벌어 쓸 수 있는 때가 분명 있었다.
하지만 어느새, 돈이 없으면 돈을 벌기 어려운 세상이 됐고
가난한 사람들은 심지어 기본적인 인권마저 누리기 힘들게 되었다.
높은 실업율과 비정규직의 고단한 삶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게 되어버린지 오래.
누구말마따나 지금의 자본주의는 인간의 얼굴을 잃어버렸다. (괴물이닷!-ㅅ-)

이런 '무서운 세상'에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도 전에 이미 '믿을만한 구석'이 생긴 나는,
그것에 익숙해질까 걱정되고
어느샌가 결국 익숙해져버려 그 이면을 볼 수 없게될까 두렵다.
왜냐, 나도 결국 특별나지 않은 인간일 것인데다가,
거대한 괴물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일개 구성원이니.
그렇다고 해서 이 모든 것을 어쩔 수 없다고 그어버리고 싶지는 않은.
- 뭐야 이 모순덩어리.



아 - 이런 밀도높지 못한 뭉툭한 글, 마음에 안 든다 -_- 횡설수설이다.
해가 다르게 머리가 나빠지는 것 같다.  brain MRI 찍어봐야되는거 아닌지 몰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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