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 2008, Suvarnabhumi Airport, Bangkok, Thailand. Nikon Coolpix P4 새벽 1시쯤 델리에서 출발, 방콕을 경유해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완전 녹초가 된 상태로 10시 반에 뜨는 비행기를 기다렸다. 쑤완나품 공항은 인천공항 뺨치게 좋은 공항이었다. 시간은 많이 남았는데 기력이 없었다. 게이트 근처 벤치에서 운동화를 벗고 가방을 베고... 들어누웠던...가? 아님 그냥 앉아서 졸고 있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 잠시 만났던 파키스탄 아저씨도 생각난다. 여전히 이렇게 기억이 생생한 것에 비해 시간은 너무나 빨리 흘러버렸다. 맥그로드간지에서 만난 티벳인 친구에게 2년후에 꼭 다시 올거라고 몇 번이나 이야기했었는데 그 2년이 이렇게 빨리 가까워질 줄이야. 어디..
D-102. 불이 붙기 시작한지는 사실 얼마 안됐지만, 요 얼마전까지만 해도, 난 충분히 즐기고 있었다. 시험도 시험이지만 지금이 아니고서야, 몇 년간 배운 의학적 지식을 이렇게 폭넓게 (달리 말하면 깊이는 없다는 얘기ㅋㅋ) 훑어볼 기회가 앞으로는 거의 없을 테니까. 아니, 거의 없는게 아니고, 없을 거다. 인턴 말에도 비슷한 시험을 보긴 하지만 잠자고 밥먹을 시간도 부족한 인턴이 공부를 해봐야 얼마나 하겠어. 지금 공부해 둔 것들을 억지로 끄집어내가며 기출문제들을 눈에 좀 바르고 시험보는 수준을 크게 벗어나진 못할 것 같다. 이후에 전공의가 되면 말할 것도 없다. 아무튼 요 얼마전까지만 해도 난 즐겁게 공부하고 있었다. 워낙 부족함이 많았기 때문에 하나하나 알아가는 재미도 있고, 예전엔 시간이 없어 무..
2차로 막거리를 마셨던 대폿집. 새벽1시즈음. 하루종일 졸업사진 찍느라 시달리고 난 후, 오래간만에 밤늦도록 이들과 술을 마셨다. 그덕에 하루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myalgia로 괴롭다.-_- 그래도, 이야기가 끊이지 않던 어젯밤이 좋았다. 아득해보이던 4년의 대학원 생활도 이제 서서히 끝이 보인다. 국가고시라는 큰 관문이 나를 기다리고 있지만, 그동안 네모난 강의실에서 아웅다웅하던, 익숙한 사람들이 새롭게 보이고 그러면서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는 건, 이 생활이 진정 마지막을 향해가고 있다는 징후.
어린 시절부터 중학교 1학년 때까지 수차례 바뀌었던 나의 장래희망 리스트에는 영화감독도 있었다. 영화에 대해 특별히 관심이 많은 건 아니었다. 한때 영화감독을 꿈꾸었던 이유는 '폼나니까'가 아니었을까. 영화보는걸 싫어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만은, 나는 그 때나 지금이나 영화보는 것을 좋아한다.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내 장래희망은 의사로 완전 고정되었지만, 영화에 대한 관심은 여전해서 또래들은 좀처럼 보지 않는 영화 월간지를 사서 보기도 했고 (제목이 기억이 안난다. 꽤 어려웠는데, 무슨 말인지 잘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사서 읽었다ㅋ), 심야 라디오 영화음악 프로그램을 즐겨들었다. 지금은 새벽 2시부터 1시간동안 방송되는 M본부의 '이주연의 영화음악'. 오랜 세월동안 진행자가 바뀌어왔는..
며칠 전, 서울에 오자마자 낯선 병원에서 실습을 했다. 몇년만에 겪어보는 러시아워 출퇴근 때문에 내내 피곤했고. 처음 만나는 교수님들과 선생님들 틈에서 나도 모르게 주눅들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무척 즐겁고 행복한 한 주를 보냈다. 생각치못했던 선생님들의 배려에 감동했고, 덕분에 기대 이상으로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당장 내가 뭔가를 배운다기 보다는, 앞으로 어떤 의사가 되어야할지, 어떤 의사가 되고싶은지 좀 더 고민해보고 다짐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심지어는, 불과 몇 개월전까지만 해도 인턴 끝나고 1년 쯤은 놀아야겠다고 은근슬쩍 정해두고 있었는데, 이제는 조금이라도 더 빨리 공부해서 실력을 갖춘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을 정도다. 이제 목표가 뚜렷해졌으니, 기꺼이 즐..
1 11시쯤 학교를 나섰다. 응급실 모퉁이를 돌아설 때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 손에 들고 있던 우산을 켰다. 까만색 바탕에 하늘색 별이 점점이 박혀있는 나의 3단 자동우산. 2006년 초여름 즈음 산 예쁜 우산. 몇개월 전부터 슬슬 우산을 펴고 접는 일이 약간 불편해졌지만, 버리고 싶지 않아서 지금껏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며 잘 쓰고 있었다. 우산을 쓰고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이 우산 완전히 고장날 때까지 계속 써야지'하는 생각을 하고는 횡단보도 건너편에 있는 편의점 앞에 섰다. 편의점 문을 열기 전에 우산을 끄려고 버튼을 눌렀는데 접히질 않았다. (3단 자동우산이므로, 손잡이에 있는 버튼을 누르면 접히는 것이 정상이다.) 여러차례 버튼을 눌러본 후, 결국 손으로 잡아당겼는데도 접히질 않았다-_-..
2000년, 난 열아홉살이었다. 아빠가 쓰시던 Pentax MX로 찍었던, 10년째 잠자고 있던 필름 몇십롤. 필름 보관 속지의 인덱스에는 날짜와 출사장소만 적혀있을 뿐, 라이트박스나 형광등에 필름을 일일이 비춰보지 않는 이상 어떤 프레임이 찍혀있는지 잘 알 수 없다. 그 중 가장 호기심을 자아내는 한 롤을 스캔했다. 그 해 여름, 동아리 선배언니와 둘이서 갔던 경동시장.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니다가 고구마 몇 개를 사왔던 기억이 스물스물 피어올랐다. 아... 너무 좋다! (고작 너무 좋다는 것이 내 표현이 상한치인걸까.-_-) 어릴적 찍었던 필름들을 정리해 차곡차곡 보관해두었다는 것이, 그 중 이런 사진을 발견했다는 것이... 좋다. 내가 사진보기를, 사진찍기를 좋아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도 새삼..
"사악한 계모가 백설 공주를 독약으로 죽이려 했던 게 아니었어요?" "넌 신문도 안 보니? 사악한 계모는 알리바이가 있었던 걸로 판명됐잖아." "우리가 미리 알았어야 했어. 그 시간에 계모는 다른 사람을 독살할 음모를 꾸미고 있었어. 백만분의 일 확률이지. 한마디로 우리가 재수가 없었어." 이번에는 데이빗이 가던 길을 멈추었다. "그러니까 아저씨들이 백설 공주를 죽이려고 했던 거였어요?" "우린 그냥 잠이나 좀 재울 생각이었지." ...... "어쨌든 우리가 사과를 먹였어. 어적어적 잘도 먹더군. 우린 훌쩍휼쩍 엉엉 울고불고 난리를 쳤지. '불쌍한 백설 공주님! 공주님이 몹시 그립겠지만 어떻게든 살아야 하겠지요!' 하고 통곡하면서. 우리는 백설 공주를 침상에 눕혀놓고 꽃으로 장식했어. 어린 토끼들을 불러..
조원선의 보컬은 봄날 듣기에 딱 좋다. 왠지모르게 아련한 봄날의 기억을 살살 피어오르게 하는 느낌이다. 롤러코스터의 보컬 조원선의 솔로 앨범이 나왔다. 데뷔 16년인가 17년만에 낸 앨범이라는데. (생각보다 나이가 많군.) 아무튼 좋다. 밖엔 봄비가 내리고 있고, 조원선의 노래를 틀어놓고, 세탁기가 일주일치 빨래를 하고 있다. 그런데 봄날 듣기에 딱 좋은 이 가수의 음색이 나로 하여금 떠올리게 하는 몇 가지 기억 중 한가지는 재미있게도 2006년 봄의 기억이다. 부산으로 온지 얼마안되었던 그 때, 그 학기 중 단 두 번을 제외한 모든 토요일에 시험이 있었다. 금요일날 밤을 거의 새다시피하고 토요일 오전에 시험을 보고 집으로 오면 12시에서 1시쯤이었다. 신발을 벗고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침대에 누워도 시원..
3주간의 응급의학과 실습을 마치고 간만에 맞이하는 '주말다운' 주말이다. 이런 날에는 일찍 잠들고 싶지만 결국엔 그럴 수 없게 된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읽거나, 드라마를 좀 봐줘야한다. (그래서 이라는 소설을 읽다가 이렇게 쓴다.) 아, 편한 친구와 시워언한 맥주 한 잔도 좋을텐데. 목요일부터 인생에서 또 한가지 새로운 것을 시작했다.- 요가 내가 왜 진작에 요가를 시작하지 않았던 걸까? 후회가 아니라, 궁금한 거다. 이유가. 그렇다면 왜 요가를 지금 시작하게 된걸까. 가장 큰 배경은 1년전의 인도여행이고, 그 다음은 몇 달 전 다녀온 템플스테이일테고, 또 요 근래 나를 힘들게 하는 내 자신 때문이라는 것이 가장 직접적인 이유가 아닐까 ... 마음의 평온을 찾고 싶었다. 나를 온전히 바라볼 수 있지..
다섯살에서 여섯살로 넘어가던 즈음이었을거다. 유년의 일부를 보낸 개포동의 모 아파트로 이사온지 얼마안되던 어느날, 아파트 앞에서 놀고 있는 또래 아이들을 엄마와 함께 창밖으로 내려다보다가 엄마 손에 이끌려 그들 앞에 나서게 되었고 그 이후로 그 연년생 자매와 친구가 되었다. 그들과 여전히 친구로 지내진 못하고 이제 사진 속 그 친구들의 얼굴마저 흐릿해졌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친구가 된다는게 그리 쉬울 수 있었다니. 지금도 여전히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여전히, 반올림하면 서른이 되는 나이가 되어서도 여전히, 나는 사람과의 관계가 어렵다. 왜이리도 여전히 서툰 건지. 고등학교 시절에도, 대학교 시절에도 하던 비슷한 고민의 패턴인것 같다. 그래도 대학 때는 그 고민을 기꺼이 짊어졌다. 그런 경험..
- Total
- Today
- Yesterday
- 갠지스강
- pentax me-super
- 인도여행
- 꼴까따
- 출산
- 바라나시
- 전시회
- 영화
- 임신
- Varanasi
- Kolkata
- 기억
- 동영상
- 의사
- 브로콜리 너마저
- 직업환경의학
- 사진전
- 혼자 떠난 여행
- 사회역학
- 여행
- Agfacolor 200
- 추천음악
- 인턴
- social epidemiology
- 친구
- 인도
- 열매
- nikon coolpix p4
- Pentax K200D
- 사진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