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서울에 오자마자 낯선 병원에서 실습을 했다. 몇년만에 겪어보는 러시아워 출퇴근 때문에 내내 피곤했고. 처음 만나는 교수님들과 선생님들 틈에서 나도 모르게 주눅들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무척 즐겁고 행복한 한 주를 보냈다. 생각치못했던 선생님들의 배려에 감동했고, 덕분에 기대 이상으로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당장 내가 뭔가를 배운다기 보다는, 앞으로 어떤 의사가 되어야할지, 어떤 의사가 되고싶은지 좀 더 고민해보고 다짐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심지어는, 불과 몇 개월전까지만 해도 인턴 끝나고 1년 쯤은 놀아야겠다고 은근슬쩍 정해두고 있었는데, 이제는 조금이라도 더 빨리 공부해서 실력을 갖춘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을 정도다. 이제 목표가 뚜렷해졌으니, 기꺼이 즐..
1 11시쯤 학교를 나섰다. 응급실 모퉁이를 돌아설 때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 손에 들고 있던 우산을 켰다. 까만색 바탕에 하늘색 별이 점점이 박혀있는 나의 3단 자동우산. 2006년 초여름 즈음 산 예쁜 우산. 몇개월 전부터 슬슬 우산을 펴고 접는 일이 약간 불편해졌지만, 버리고 싶지 않아서 지금껏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며 잘 쓰고 있었다. 우산을 쓰고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이 우산 완전히 고장날 때까지 계속 써야지'하는 생각을 하고는 횡단보도 건너편에 있는 편의점 앞에 섰다. 편의점 문을 열기 전에 우산을 끄려고 버튼을 눌렀는데 접히질 않았다. (3단 자동우산이므로, 손잡이에 있는 버튼을 누르면 접히는 것이 정상이다.) 여러차례 버튼을 눌러본 후, 결국 손으로 잡아당겼는데도 접히질 않았다-_-..
2000년, 난 열아홉살이었다. 아빠가 쓰시던 Pentax MX로 찍었던, 10년째 잠자고 있던 필름 몇십롤. 필름 보관 속지의 인덱스에는 날짜와 출사장소만 적혀있을 뿐, 라이트박스나 형광등에 필름을 일일이 비춰보지 않는 이상 어떤 프레임이 찍혀있는지 잘 알 수 없다. 그 중 가장 호기심을 자아내는 한 롤을 스캔했다. 그 해 여름, 동아리 선배언니와 둘이서 갔던 경동시장.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니다가 고구마 몇 개를 사왔던 기억이 스물스물 피어올랐다. 아... 너무 좋다! (고작 너무 좋다는 것이 내 표현이 상한치인걸까.-_-) 어릴적 찍었던 필름들을 정리해 차곡차곡 보관해두었다는 것이, 그 중 이런 사진을 발견했다는 것이... 좋다. 내가 사진보기를, 사진찍기를 좋아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도 새삼..
"사악한 계모가 백설 공주를 독약으로 죽이려 했던 게 아니었어요?" "넌 신문도 안 보니? 사악한 계모는 알리바이가 있었던 걸로 판명됐잖아." "우리가 미리 알았어야 했어. 그 시간에 계모는 다른 사람을 독살할 음모를 꾸미고 있었어. 백만분의 일 확률이지. 한마디로 우리가 재수가 없었어." 이번에는 데이빗이 가던 길을 멈추었다. "그러니까 아저씨들이 백설 공주를 죽이려고 했던 거였어요?" "우린 그냥 잠이나 좀 재울 생각이었지." ...... "어쨌든 우리가 사과를 먹였어. 어적어적 잘도 먹더군. 우린 훌쩍휼쩍 엉엉 울고불고 난리를 쳤지. '불쌍한 백설 공주님! 공주님이 몹시 그립겠지만 어떻게든 살아야 하겠지요!' 하고 통곡하면서. 우리는 백설 공주를 침상에 눕혀놓고 꽃으로 장식했어. 어린 토끼들을 불러..
봄날 듣기 좋은 노래. 날씨는 좋은데 기분은 우리한 금요일 오후. @_@
조원선의 보컬은 봄날 듣기에 딱 좋다. 왠지모르게 아련한 봄날의 기억을 살살 피어오르게 하는 느낌이다. 롤러코스터의 보컬 조원선의 솔로 앨범이 나왔다. 데뷔 16년인가 17년만에 낸 앨범이라는데. (생각보다 나이가 많군.) 아무튼 좋다. 밖엔 봄비가 내리고 있고, 조원선의 노래를 틀어놓고, 세탁기가 일주일치 빨래를 하고 있다. 그런데 봄날 듣기에 딱 좋은 이 가수의 음색이 나로 하여금 떠올리게 하는 몇 가지 기억 중 한가지는 재미있게도 2006년 봄의 기억이다. 부산으로 온지 얼마안되었던 그 때, 그 학기 중 단 두 번을 제외한 모든 토요일에 시험이 있었다. 금요일날 밤을 거의 새다시피하고 토요일 오전에 시험을 보고 집으로 오면 12시에서 1시쯤이었다. 신발을 벗고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침대에 누워도 시원..
히말라야 모노그래프 ; Himalaya Monograph - 박종우 사진展 2009.3.21-5.31, 부산 고은사진미술관 내가 처음 이 길을 찾았던 10여년 전만 해도 히말라야를 넘는 소금 교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었다. 그러나 지금은 점점 줄어들고 있으며, 그나마 온전한 소금 무역이 조금 남아있는 곳은 서부 네팔의 돌포 지역이다. 인도양의 값싼 바다소금이 유입되면서 히말라야 국경교역이 끝나가는 듯 했으나 마오이스트 반군의 준동으로 곳곳의 도로가 막히는 바람에 돌포 지역에는 티베트와의 소금 무역이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서부 네팔의 돌포와 훔라 지역은 옛 히말라야의 풍경의 붕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역이기도 하다. 네팔 언론들은 이 지역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개통될 때마다 자랑스럽게 보도를 하지만, ..
무려 몇 개월만에 다시 시간을 거슬러 2008년 1월의 바라나시. 지은, 정모와 온전히 하루를 보낸 그 날은 내가 바라나시를 떠나기 하루 전 날이었다. 도저히 기차표를 예매하는 일을 직접 행동으로 옮기지 않고서는 바라나시에 계속 머물러 있을 것 같았기 때문에 이틀전엔가 아그라로 가는 기차표를 예매했고 역시나 바라나시에서의 마지막 밤은 아쉬웠다. 떠나기 전 날, 기차표를 미룰까 하는 생각을 잠시나마 했을 만큼. 사진 찍기 전에 이발사 아저씨와 그의 손님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양해를 먼저 구하고 사진을 찍었다. 내가 찍은 세 장의 사진 중엔 그런 듯한 느낌이 별로 없지만 뷰파인더로 보고 있자니 이발사 아저씨가 어찌나 카메라를 의식하시던지. ㅋㅋ 속으로 자꾸 웃음이 나왔었다. 일부러 그런 모습을 피해 셔..
3주간의 응급의학과 실습을 마치고 간만에 맞이하는 '주말다운' 주말이다. 이런 날에는 일찍 잠들고 싶지만 결국엔 그럴 수 없게 된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읽거나, 드라마를 좀 봐줘야한다. (그래서 이라는 소설을 읽다가 이렇게 쓴다.) 아, 편한 친구와 시워언한 맥주 한 잔도 좋을텐데. 목요일부터 인생에서 또 한가지 새로운 것을 시작했다.- 요가 내가 왜 진작에 요가를 시작하지 않았던 걸까? 후회가 아니라, 궁금한 거다. 이유가. 그렇다면 왜 요가를 지금 시작하게 된걸까. 가장 큰 배경은 1년전의 인도여행이고, 그 다음은 몇 달 전 다녀온 템플스테이일테고, 또 요 근래 나를 힘들게 하는 내 자신 때문이라는 것이 가장 직접적인 이유가 아닐까 ... 마음의 평온을 찾고 싶었다. 나를 온전히 바라볼 수 있지..
다섯살에서 여섯살로 넘어가던 즈음이었을거다. 유년의 일부를 보낸 개포동의 모 아파트로 이사온지 얼마안되던 어느날, 아파트 앞에서 놀고 있는 또래 아이들을 엄마와 함께 창밖으로 내려다보다가 엄마 손에 이끌려 그들 앞에 나서게 되었고 그 이후로 그 연년생 자매와 친구가 되었다. 그들과 여전히 친구로 지내진 못하고 이제 사진 속 그 친구들의 얼굴마저 흐릿해졌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친구가 된다는게 그리 쉬울 수 있었다니. 지금도 여전히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여전히, 반올림하면 서른이 되는 나이가 되어서도 여전히, 나는 사람과의 관계가 어렵다. 왜이리도 여전히 서툰 건지. 고등학교 시절에도, 대학교 시절에도 하던 비슷한 고민의 패턴인것 같다. 그래도 대학 때는 그 고민을 기꺼이 짊어졌다. 그런 경험..
어제부로 정신과 실습이 끝났다. 이로서 메이져과 실습은 끝난 거다. (메이져과 :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정신과) 아직 내가 사고친 실수를 수습해야할 것이 여전히 남아있어 마음 한구석이 살짝 어둡긴 하지만-_-a 어쨌든 끝났다. 36주간 실습을 하는 동안, 이건 아니라고, 이건 절대 못할 것 같다고 배제시킨 과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강력하게 구미가 당기는 과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내가 염두에 두고 있는 과는 아직 실습을 돌지도 않았고, 필수도 아니다) 내과보다는 소아과가, 외과보다는 산부인과가 재미있었다. 외과나 산부인과가 의외로 땡길지도 모른다고 내심 기대했었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웬걸! 기대는 커녕 오직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정신과가 급 땡긴다. 정신과 실습을 하면서 좋았던 몇..
팔순 할아버지와 그의 소 - 40년을 함께한 동반자. 친구라고 하기엔 함께한 시간과 그 끈끈함을 표현하기에 좀 부족할지도 모르겠다. 아직 여태껏 살아온 인생의 시간이 30년도(?) 안되는 나로서는 그 오랜시간의 관계를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할머니는 입버릇처럼 팔자타령에, 소를 팔라고 이야기하지만, 40년간 함께해온 소를 위해 농약을 치지 않고, 사료 대신 먹일 꼴을 부지런히 베어 소죽을 끓이는 할아버지. 하루도 빠짐없이 들에 나가 일하는 할아버지를 태우고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걸어가던 소. 오랜 시간 함께하면서 어느새 서로가 서로를 닮아왔을런지도... 영화는 그들의 마지막 1년을 담았다. 누가봐도 늙고 지쳐보이는 기색이 역력해보이던 소가 마침내 떠나던 날, 좋은 곳으로 가라는 할아버지의 이야기, 나도 ..
작년 이맘때 (엔 이미 나는...바라나시에 있었지만.) 인도 여행을 준비하면서 한창 인도여행 인터넷 카페에 들락거리면서 신기했던 것들 중 하나는, 인도에 여행가서 다들 한편이상은 꼭 영화를 보는 분위기라는 거였다. 인도영화엔 대체로 영어자막도 나오나보다, 싶었는데 그건 아닐 것 같았다. 그래서, 정팅때 채팅방에 들어가 사람들에게 물어봤다. - 인도영화를 어떻게 봐요? 힌디어를 어떻게 알아듣나요? 영어자막 나오는건 아니라던데... - 힌디어 몰라도 줄거리가 단순해서 대충 다 알 수 있어요ㅋㅋ 그리고 특이한 점은 대부분이 뮤지컬 영화라는 것. 뭔가 중요한 장면이 시작되면 음악이 흘러나오면서 갑자기 등장인물들이 춤추며 노래한단다. 딱히 뮤지컬 영화라고 내세워서 제작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인도의 영화시장은 ..
어린 시절에는 한 해의 마지막날과 새해 첫날에는 늘 새로운 결심에 대한 내용을 일기에 썼다. 특별히 일기 쓸 거리가 없어서일수도 있겠지만, 그렇게라도 새해 첫 날을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맞이하지 않았을까, 어린 시절의 나는.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한 해의 마지막날이나 새해 첫날이나, 그 사이에 명확한 경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어김없이(감사하게도) 찾아와주는 또다른 하루일 뿐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 사실은 그렇다. 1999년 마지막날, 새로운 밀레니엄이 밝아온다며 전세계가 들썩였다. 그 어떤 새해맞이보다도 시끌벅적했던 그 때.따지고보면 ‘진짜’밀레니엄은 2001년부터 시작인데^^; 새 천년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맞이하고 싶은 사람들의 욕망 때문에 때이른 밀레니엄 맞이를 하게 된 게 아니었을까. 아무..
1 지난 토요일. 오래전부터 생각했던 일이긴 했지만 금정산 아래에서 범어사로 가는 버스를 타면서도 특별한 기대감이나 설레임같은 것은 거의 없었다. (하긴 인도로 가던 날도 무덤덤했는데 하물며...ㅋ) 범어사에 처음 온 것은 아니었지만 하룻밤 묵을 생각으로 일주문을 지나니 느낌이 좀 달랐다. 사천문을 지나고 대웅전 앞마당도 지나, 일정 시작 시간보다 약간 늦었으므로 빠른 걸음으로... 범어사 깊숙이 들어앉은 휴휴정사로 찾아갔다. 다행히 아직 도착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고, 나도 법복을 받아 갈아입고 큰 방에 앉았다. 웅산스님으로부터 사찰예절을 배우는 것으로 일정이 시작되었다. 단전에 두 손을 모으는 '차수'라든지, '합장' '반배' '고두배' 등의 예절과, 예식을 할 때 부르는 기본적인 노래 - '삼귀의..
보임&문희 - 이들을 만나는 건 거의 습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주말을 맞아 2박3일로 서울에 가거나 그보다 좀 더 길게 가거나, 어쨌든 나는 이들에게 서울로 간다는 사실을 알리고 굳이 만나자는 말을 누가 하지 않아도 '내가 서울에 가면' '셋이서' '만난다' 물론 시간맞추기 어려워서 둘이서 만날 때도 있고, 보임언니와 문희는 서로 회사가 지척에 있어 나보다 더 자주 만나긴 하지만. (그래서 나더러 졸업하면 둘의 회사와 가까운 강북삼성병원으로 오라고 난리.) 셋은 어찌보면 참 다른데 어찌보면 참 닮기도 했다. 나는 철없던 시절에 보임언니와 노천 날개 위에서 수없이 데이트를 했고, 우연히 언니의 비밀을 알게된 적이 있다. 문희에게 나는 '카리스마 넘치는' 선배였고 (지금은 그런 환상이 다 깨졌다네♪) 문희..
서울에 올라갈 때면 올라가는 기차 안에서부터 친구들과 연락해 약속을 잡기 일쑤였는데 이번엔 서울가기 며칠 전에 동생들과 약속을 잡았다. 물론 집에서 셋이 밥을 먹은 적이야 여러번 있지만 진지한 대화가 필요한 시기라는 걸 떠나서 일단 내가 그러고싶어서 내가 먼저 동생들에게 문자를 돌렸다. 수다의 범위는 여기저기를 넘나들었지만 우리의 메인 이슈는 일관되게 막내의 진로에 관한 것이었다. 믿어주어야할지 아니면 뜯어말려야할지 가족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것 같다. 이래저래 걱정이지만 한편으론 아직 말그대로 새파랗게 어린 나이이니만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스스로 한 번 부딪혀보고 직접 깨닫는게 좋겠다는게 내 생각이다. 물론 부모님이 (어쩌면 나에게도 여파가 미치려나? ㅎㅎ) 감당하셔야할 경제적 정신적 부담..
여행 중 만난 사람들 몇몇은 Seoul을 Seo-ul이 아니라 Se-oul이라고 발음해서 (씨올~씨울) 처음에 내가 잘 못 알아들었던 생각이 난다. 물론 이건 그냥 갑자기 생각난 사실이고-_- 이제서야 돌이켜 생각해보니, 지난 학기가 막바지로 갈 수록 나는 '서울 가고 싶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던 것 같다. 기말고사 기간 중에도, 공부 많이 했냐, 시험 잘 봤냐는 질문들에 대한 대답도 역시 '서울 가고 싶어'였다. 방학 같지도 않은 방학이 시작된지 8일이 지난 오늘 나는 서울에 왔다. 생각해보니 서울에 온 지 그렇게 오래된 것도 아니었다. 10월 말에 왔으니 한 달 반 정도. 그런데 난 그 한 달 반이 서너달 쯤으로 느껴졌었다. 지난 학기말에는 너무 지쳤고 바닥을 쳤기 때문이겠지, 아마도. 처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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