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생활 1년동안 가장 널럴하고 편안했던 소아과. 아침 일찍일어나 회진 준비를 하고, 회진이 끝나면 정명이랑 휴게실에서 TV를 보며 느긋하게 아침 식사를 즐겼다. 그리곤 이렇게 방으로 들어와 낮잠을 즐기곤했다ㅎㅎ 정든 부천을 떠나 무시무시한 의정부로 곧 떠나야했기에 슬슬 아쉽기도 했고 같은 방 친구들이 더욱 애틋했던, 그 여름날. 지금도 좀 그렇지만, 좀 더 시간이 지나고 꽤 경력이 쌓인 의사가 되고나면 2010년, 실수투성이 인턴이었던 시절을 종종 떠올리며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지면서 한편으론 조금 그리워질 것도 같다. (물론 인턴시절로 되돌아가고싶지는 않다ㅎ)
어느덧 6월 - 이따금씩 선생님들이 밖에 나가서 점심먹자고 하실 때 주섬주섬 햇빛구경하듯이 병원 앞 횡단보도를 건널 때, 살랑거리는 봄바람을 느꼈었다. 어느날엔가는 중환자실 창 너머로 벚꽃이 만개한걸 보았고 토요일 오후 윤중로의 빼곡한 사람들을 구경하려고 일부러 집에 가는 길에 지하철 대신 버스를 탔다. 그것도 잠시- 이젠 여름 냄새가 난다. 아직 일교차가 제법있어 저녁엔 반소매 차림으로 외출하기에는 서늘한 감이 있지만 코끝에 묻어나는건 풀 냄새 같기도 하고 나무 냄새같기도 한, 습습한 여름 냄새다. 1년차의 6월 이렇게 저녁시간에 짬내어 포스팅을 할 수 있는 1년차가 몇이나 될까 물론, 의국이 바로 이웃해있는 피부과 1년차 정도라면 그럴수 있을런지도...? 아무튼 이제 석달 이상 해오던 일에 꽤 익숙해..
1년차가 된지 어느덧 한달반이나 지났다. 처음 얼마간은 학생시절에, 직접 이곳 의국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전화 연락을 시도하다가 실패한 후 동아리 주소록에서 발견한 어느 선배에게 연락하고, 의국장 선생님과 닿은 후 교수님들께 직접 메일을 보내 성사된 일주일간의 실습, 그 때 '여기서 레지던트 수련을 받게되면 좋겠다'라고 지금껏 바래왔던 바로 그 곳, 그 병원의 1년차가 되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고도 신기하고 고마웠다. 물론 다른 것 없이 적극적인 지원동기만으로 1년차로 받아주신 교수님들과 선생님들께 감사하다. (2.5:1의 경쟁율 - 그저 제비뽑기나 사타리타기하듯 쉽게 새 사람을 들이진 않으셨을거라고 물론 믿고있다) 여느 산업의학과 전공의라면 업무량이 많아 퇴근시간이 늦어지거나 평일에 다하지 못한 일을 주말..
작년 2월, 첫 출근을 며칠 앞두고 1년간의 인턴 스케쥴표가 공개되었다. 인턴 근무는 1개월에 1개 과에서 근무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첫 근무는 2월 중순에 시작하므로 40여일간 근무하는것이 보통이다. 그 수많은 과들 중에서 응급실, 신경외과만 아니면 다 괜찮다고 간절히 바랬건만 스케쥴표를 확인하고도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어 그 엑셀파일을 몇번이나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확인했었는지 모른다. 응급의학과! 인턴 첫 달의 응급실은 더더욱 힘들기 때문에 가능하면 현역 남자의사들을 배치한다고 한다는 이야기는 진정 헛소문이었나... 어쨌든, 2010년 2월 18일, 난 부천성모병원 응급의학과로 첫 출근을 했었다. CMC에 속해있는 수도권의 6개병원 가운데 유일하게(아마도?) 응급의학과 전공의가 없는 곳. 그야..
경우랑 또 한 명은... 보라 아니면 종석이었을 거다. 셋이서 장구를 챙겨매고 있었다. 가물가물한 설장구 가락을 구음으로 맞춰보는데, 너무 오랜만에, 그것도 준비없이 갑자기 설장구를 하려니 쑥스럽고 어색한 한편으론 그마저도 즐거워 자꾸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왠 갑자기 삐삐 소리람. 아. 핸드폰이 울렸다. 오전 10시 30분쯤. 2년차 선생님 콜. 이번달 들어 가장 늘어지게 잠을 잘 수 있었던 어제 오전, 달콤했던 한 컷. 아직도 내겐 설장구에 대한 로망이 마음 한 구석에 있나보다.
또 실수다. 재원환자가 많으면 많은대로, 또 이렇게 적어지면 적은대로. 어제 입원한 환자 chest PA를 미처 확인하지 않았다. 아니, 분명히 열어보긴 열어봤던 것 같은데 왜 그 확연한 pneumothorax를 보지 못했던걸까! 아아악- 특별히 호소하는 증상도 없었던 터라 그냥 무심코 지나쳐버렸나보다. 50%는 족히 되어보일만한 pneumo를-_- 결국 오늘 아침 예정되어있던 bronchoscopy는 취소되었다. 환자에게 폐를 끼친 셈이다. 그나마 그 분이 약간 늦은 아침식사라도 하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질까. 나도 어제 저녁에 그것 때문에 할일이 생겨서 외출도 포기하고 살짝 슬퍼하고 있었는데. 대부분의 레지던트들이 겪는 malpractice의 큰 부분은 자신이 처방한 검사의 결과를 확..
Feb 2008, Suvarnabhumi Airport, Bangkok, Thailand. Nikon Coolpix P4 새벽 1시쯤 델리에서 출발, 방콕을 경유해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완전 녹초가 된 상태로 10시 반에 뜨는 비행기를 기다렸다. 쑤완나품 공항은 인천공항 뺨치게 좋은 공항이었다. 시간은 많이 남았는데 기력이 없었다. 게이트 근처 벤치에서 운동화를 벗고 가방을 베고... 들어누웠던...가? 아님 그냥 앉아서 졸고 있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 잠시 만났던 파키스탄 아저씨도 생각난다. 여전히 이렇게 기억이 생생한 것에 비해 시간은 너무나 빨리 흘러버렸다. 맥그로드간지에서 만난 티벳인 친구에게 2년후에 꼭 다시 올거라고 몇 번이나 이야기했었는데 그 2년이 이렇게 빨리 가까워질 줄이야. 어디..
D-102. 불이 붙기 시작한지는 사실 얼마 안됐지만, 요 얼마전까지만 해도, 난 충분히 즐기고 있었다. 시험도 시험이지만 지금이 아니고서야, 몇 년간 배운 의학적 지식을 이렇게 폭넓게 (달리 말하면 깊이는 없다는 얘기ㅋㅋ) 훑어볼 기회가 앞으로는 거의 없을 테니까. 아니, 거의 없는게 아니고, 없을 거다. 인턴 말에도 비슷한 시험을 보긴 하지만 잠자고 밥먹을 시간도 부족한 인턴이 공부를 해봐야 얼마나 하겠어. 지금 공부해 둔 것들을 억지로 끄집어내가며 기출문제들을 눈에 좀 바르고 시험보는 수준을 크게 벗어나진 못할 것 같다. 이후에 전공의가 되면 말할 것도 없다. 아무튼 요 얼마전까지만 해도 난 즐겁게 공부하고 있었다. 워낙 부족함이 많았기 때문에 하나하나 알아가는 재미도 있고, 예전엔 시간이 없어 무..
2차로 막거리를 마셨던 대폿집. 새벽1시즈음. 하루종일 졸업사진 찍느라 시달리고 난 후, 오래간만에 밤늦도록 이들과 술을 마셨다. 그덕에 하루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myalgia로 괴롭다.-_- 그래도, 이야기가 끊이지 않던 어젯밤이 좋았다. 아득해보이던 4년의 대학원 생활도 이제 서서히 끝이 보인다. 국가고시라는 큰 관문이 나를 기다리고 있지만, 그동안 네모난 강의실에서 아웅다웅하던, 익숙한 사람들이 새롭게 보이고 그러면서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는 건, 이 생활이 진정 마지막을 향해가고 있다는 징후.
어린 시절부터 중학교 1학년 때까지 수차례 바뀌었던 나의 장래희망 리스트에는 영화감독도 있었다. 영화에 대해 특별히 관심이 많은 건 아니었다. 한때 영화감독을 꿈꾸었던 이유는 '폼나니까'가 아니었을까. 영화보는걸 싫어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만은, 나는 그 때나 지금이나 영화보는 것을 좋아한다.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내 장래희망은 의사로 완전 고정되었지만, 영화에 대한 관심은 여전해서 또래들은 좀처럼 보지 않는 영화 월간지를 사서 보기도 했고 (제목이 기억이 안난다. 꽤 어려웠는데, 무슨 말인지 잘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사서 읽었다ㅋ), 심야 라디오 영화음악 프로그램을 즐겨들었다. 지금은 새벽 2시부터 1시간동안 방송되는 M본부의 '이주연의 영화음악'. 오랜 세월동안 진행자가 바뀌어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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