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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dinary scene

생일

갈매나무 2017. 1. 30. 21:35

 

올해 내 생일은 설 연휴 시작 전날이었다.

어쩌다보니 짝꿍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휴가를 쓰게 됐고,

나도 생일이니 같이 시간을 보낼 겸, 휴가를 썼다.

 

이제 겨우 서로의 생일을 챙겨준 것이 고작 세번인데도,

며칠전 서로의 생일에 무엇을 선물했는지 꼽아보니  생각나지 않는게 있어서 좀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기록해두기로 했다.

앞으로 수십년을 함께 살아갈텐데 매년 생일에 무얼 선물했는지, 뭘 했는지 다 기억할 수는 없을 것이다.

특별히 기억에 남을 생일날도 있을 거고 여느날과 다름없이 보내는 생일도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둘다 물질적인 것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편이라

(물론 나의 경우에는 다른 여자들에 비해 그런 편이라고 생각한다 ㅋㅋ)

거창한 선물을 바라지는 않는다.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것. 매년 생일마다 '나를 정말 위해주는구나'하는 느낌이 드는 선물이라면 좋겠다.

값비싼 선물일수록 그 마음이 잘 담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그가 내게 준 선물들도 대개 소소한 것들이었다. 작은 토토로 오르골 같은.

나는 그런 선물들을 받고서 기뻐했고 충분히 행복했다.

 

(생각해보니 난 작년 그의 생일에 꽤 비싼 선물을 줬었다. ㅋㅋ

가죽 서류가방. 원래 쓰던 가방이 너무 낡아서 고른 선물이었으니. ^^)

 

어쨌든.

결혼 후 얼마간의 주말부부 생활을 끝내고 처음 맞은 내 생일이었다.

휴가를 냈으니 우리의 연휴는 하루일찍 시작됐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 그가 차려준 점심을 먹었다.

미역국, 그리고 내가 먹고싶다고 했던 고추잡채.

먹으려고 하자 그가, 잠깐만! 하더니 차에 가서 작은 안개꽃다발을 갖다주었다. :)

(편지는 이틀인가 사흘 후에 주었지만.ㅋ )

 

요리를 즐기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레시피대로 슥슥 막힘없이 만들어준 고추잡채.

맛있게, 배불리 먹었다.

 

 

 

결혼한지 500여일만에 드디어 혼인신고를 했고, 영화 <매기스플랜>을 보기로 했다.

영화 시작 전 한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서 월드컵공원을 걸었다.

연휴 전날이지만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거의 없었다. 산책하는 동안 다섯명쯤 본 것 같다.

눈이 쌓여있어 더 조용하고 평온한 공원을 그냥 걸었다.

결혼 몇달 전 늦봄 어느날엔가 왔던 일을 이야기하기도 하면서.

영화를 보고, 집 근처 베이글 가게에서 베이글 샌드위치를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정말 특별한 일은 없었던, 소박한 생일이었다.

혼인신고를 한 것 정도가 좀 특별한 일일 수 있겠지만..

정말 즐거운 하루였다.

'아, 행복하다' 싶은 그런 시간.

 

앞으로 수십년간 서로의 생일을 챙겨주겠지만(그럴 수 있기를 소망한다.)

좀 더 특별히 기억에 남는 그런 날일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남편과 유명한 관광지에 가거나 아름다운 풍경을 함께 보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함께 살면서 그와 가장 많이 하고 싶은 것은, 그냥 그런 일상의 소소한 일들이다.

함께 산책하는 것,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함께 먹는 것,  

맥주 마시며 영화 보는 것,

저녁밥을 먹으며 그 날 하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아이가 생긴다면 일상의 풍경은 많이 달라지겠지만,

그래도 평생 같이 하고 싶은 것들은 변함없이 그런 일들일 거라고 생각한다.

또한 그렇게 하기 위해선 서로간의 노력과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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