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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dinary scene

엄마의 15년

갈매나무 2013. 12. 17. 17:48


엄마가 식당을 처음으로 개업하시던 날이 기억난다. 

수능을 3개월쯤 앞둔 초가을이었을 거다. 학교가 있는 강서구에서 엄마 가게가 있는 강남구까지 와서는, 

손님으로 복작거리던 가게 한켠(도 아닌 실은 가게 밖 테이블)에서 정신없이 후루룩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

이듬해 여름, 우리 가족은 가게 바로 옆의 아파트로 이사했고, 지금껏 그 동네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손으로 꼽아보니 장장 15년.  

칼국수에서 시작해, 고기집으로 간판을 바꾼 엄마 가게는 그 동네에서 유일하게 10년이상 주인도, 간판도 바뀌지 않은 식당이라고 한다.(물론, 간판 리모델링은 했다.ㅋ) 

가족들과 함께 고기를 먹으러 오던 꼬마가, 다 자라 외국으로 유학을 간 후에도 한국으로 돌아오는 방학 때면 늘 엄마 가게에 한번은 온다고 했다.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서도 한달에 한번은 찾아온다는 여러 단골 손님들.

종종 엄마 가게에서 일을 도울 때면, 큰 딸이냐, 작은 딸이냐 물어보는 손님들도 꽤 있었다.

(내게는 주로 둘째딸이냐고..ㅎ)


15년간 자리를 지킨 엄마 가게에서 우리 삼남매의 대학 등록금이 나왔다. 

어쩌다 셋 모두 사립대학에, 게다가 동생 둘은 예체능계열에... 

나는 전공을 바꾸면서 몇해 더 부모님께 도움을 받았다.

우리 삼남매가 공부할 수 있었던 든든한(?) 돈줄이었다고나 할까. 


며칠 전, 마지막으로 영업을 마치고,  엄마 가게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엄마는 시원섭섭하지 않으시다고 했다. 그저 섭섭하다고 하셨다.

일년에 두 번 명절, 재작년 가족 여행 때 5일 쉰 것 이외에는 정기 휴일도 없이 달려온 15년이었다. 

한동안은 그저 아무 생각 없이 푹 쉬셨으면 좋겠는데 

그냥 쉬고만 있으면 몸이 아프다며 엄마는 또 다른 궁리를 하고 계신 모양이다. 


엄마가 또 다른 어떤 일을 하시게 될지 모르겠지만

60년이 약간 안되는 엄마 인생 중에 15년이면 결코 적지 않은 시간일터,

15년간 엄마의 일상이었던 가게에서의 엄마의 모습을 한번쯤 직접 카메라에 담아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가게 문닫는 날이 이렇게 생각보다 빨리 올 줄은 몰랐다.

후회를 잘 하지 않는 편인데, 이건 두고두고 후회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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