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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17 무갈사라이역, 바라나시로 가기 전 기차를 갈아타기 전에 시간이 남아서 한 컷 _ nikon coolpix p4
첫번째 도시였던 꼴까따에서 다른 곳으로 떠나는 것은, 내가 넘어서야할 높은 산처럼 느껴졌다.
낯선 여행지의 식당에서 혼자서 밥을 먹거나,
북적이는 거리에서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릭샤왈라와 1:1로 맞짱뜨거나,
마살라 향이 유난히 강한 어떤 인도 음식에 도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혼자서 열몇시간 밤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는 것은
몇주간의 인도 여행에서 언젠가 한번은 내가 꼭 풀어내야하는 미션이었다.
행선지를 결정하는 것부터, 기차표를 예매하는 것, 어두운 시간에 기차역으로 가는 것,
그리고 기차에서 내 짐을 어떻게 관리할 것이고, 화장실 갈 땐 어찌할 것이며,
외국인여자에 대한 인도남자들의 호기심가득찬 찝적댐에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이른 아침 행선지에 도착해서 어떻게 여행자거리로 가야할지...
인도에서의 첫번째 기차여행을 앞둔 내게는 그 어느것 하나 호락호락해 보이지 않았다.
기차표 예매하기
내게 시간이 많았다면 파라곤에서 며칠이고 더 머물렀을지도 모를일이다.
1~3일씩 찍고 찍는 여행을 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내겐 한달가량의 시간뿐이니 그럴순 없었다.
꼴까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일단 다음 목적지를 결정하고, 차편을 구해야했다.
인도에 왔다면 한번씩은 누구나 거쳐가야하는 바라나시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곳인 보드가야
고원의 풍경이 아름답다는 다즐링 (다즐링티, 바로 그곳)
바라나시는 처음부터 점찍어놓은 세 곳 중 한 곳이었지만 보드가야나 다즐링도 땡기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역시, 보드가야나 다즐링에 갔다가 바라나시로 가면 찍고 찍는 빡빡하고 힘든 여행에
가까워질 것 같아 결국 마음을 정리하고 곧장 바라나시로 가기로 했다.
'무조건 고아(Goa)로 가세요, 고아로!!' 를 내게 외쳐대던, 고아에서 38시간 기차타고 꼴까따로 온
J군의 유혹도 있었지만.ㅋㅋ (고아Goa : 아름다운 해변으로 유명한, 인도 남부의 도시)
대개 기차표 예매 사무소는 기차역에 있는데, 특이하게도 꼴까따의 예매사무소는
웨스트벵갈 주 정부 청사와 증권시장이 집중되어있는 BBD Bagh(기차역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에
있었다. Sudder st.에서 걸어가기엔 약간 멀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을 정도의 거리였지만 오랜 영국풍의
분위기가 난다는 그 지역 구경도 할 겸 처음으로 혼자서 Sudder st.를 벗어나 BBD Bagh을 찾아갔다.
가이드북의 지도에는 BBD Bagh의 정확히 어느 곳에 예매사무소가 있는지 표시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가며 BBD Bagh을 찾아갈 수 밖에 없었다. 이 사람 저 사람한테 물어보다가,
노점에서 짜이를 마시고 있던, BBD Bagh의 어느 사무실에서 일한다는 여성분을 만나 그 분이 기차예매소 문 앞까지 나를 데려다주었다. 생각보다 시간이 꽤 걸려서 그 분에게 폐를 끼칠까봐 가는 길 내내, 그냥 혼자갈 수 있으니 괜찮다고 몇번이나 이야기했는데도... (감동 -_ㅠ)
가는 길에 만난 그 여성분과,
외국인 전용 예매 사무소의 친절한 아저씨 덕분에 무사히 기차표를 예매할 수 있었다.
(그 날 오후에 뭔가 이상을 발견하고 사무소 문닫기 10분전에 다시 택시를 타고 달려가
기차표를 바꾸는 작은 소란을 겪긴 했지만-_-; 물론 그 위기도 친절한 아저씨 덕에 잘 넘길 수 있었다.)
Howrah station
며칠간 어디로 가야할지 계속 생각중이라고 했던 M양과 C군 (귀여운 어린 커플ㅎㅎ)은 결국
오르차에 가기로 결정했고, 나와 같은 날 같은 역에서 한시간 반 간격으로 출발하는 차편이었다.
셋이서 함께 기차역으로 간다면야 택시비 아껴서 좋고, 게다가 난 처음 기차여행이니 불안감을
덜 수 있어서 좋았지만 그 북적거리고 어수선한 기차역에서 두 사람이 한참동안이나 기다려야하는 것이
많이 미안했다. 그래서 굳이 그렇게 하지 않고 따로 가도 괜찮다고 이야기했지만 그 둘은,
"괜찮아요, 언니 기차역 처음인데 혼자가면 무섭잖아요-"라며
굳이 나와 함께 택시를 타고 기차역으로 향했다.
도미토리의 여러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 후 여러 사람의 배웅을 받으며 큰 길가에서 택시를 탔다.
겨우 4박5일 지냈을 뿐인데 파라곤을 떠난다는 것이, 그 곳의 좋은 사람들과 헤어진다는 것이
얼마나 아쉬웠는지... 하우라 역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하마터면 눈물이 다 나올 뻔했다.
어차피 길에서 만나 길에서 헤어지는 사람들, 인연이 있다면 어디에선가 다시 만나겠지...
꼴까따 이후로 다른 도시에서 한두번 스쳤던 사람과 다른 곳에서 우연히 다시 만났던 적이 여러번
있었다. 그러나 나와 같은 날 다즐링으로 떠났던 Y양과 2월에 델리에서 재회했을 뿐, 꼴까따 이후로
파라곤의 사람들 중 그 누구와도 다시 만나지 못했다. 불행하게도. ㅠㅠ
8시 좀 넘어서 택시를 탔는데, 2,30분이면 도착한다는 다른 여행자들의 말과는 달리 거의 한시간 가까이
달려 하우라 역에 도착했다. 택시를 타면서 흥정을 할 때, 큰 화재사고가 나서 원래 가는 길이 차단되어
다른 길로 돌아가야하기 때문에 평소보다 더 비싼 요금을 받아야한다고 했던 택시기사들의
이야기가 거짓말이 아니었나보다. 그 전날 BBD Bagh에서 타고르 하우스 가는 길에 보았던
그 화재사고 때문인듯했다.
아무튼, 나보다 더 큰 배낭을 메고, 우리 셋은 하우라역에 도착했다.
처음 본 인도의 기차역은...;
일단 상상했던것보다 훨씬 크고, (플랫폼이 대체 몇개였더라? 최소한 15개가 넘었던것 같은데.)
평일이었는데도 한국에서의 주말 기차역을 방불케할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사람들이 무슨 난민 합숙소처럼 기차역 건물 안 곳곳에 그냥 누워 잠을 자고, 담요를 깔고 앉아있었다.
그런 풍경은 이후에는 갈수록 아주 익숙해졌지만, 처음 본 그 때는 신선했다. (??? 신선?-_-;)
뭔가 그런 풍경이야말로 굉장히 '인도스럽다' 혹은 '인도틱하다'랄까. ㅎㅎ
M양과 C군 역시 그 틈 어딘가로 걸어가더니 '여기가 좋겠네'라며 비닐봉지를 깔고 앉았다. 물론 나도ㅎㅎ
처음겪는 인도의 기차역인지라, 바닥에 자릴잡은 후에도 두리번거리는 나에게
'언니, 비스킷 좀 드세요' 라며 굿데이를 내밀던 M양,
'누나, 누나가 탈 기차가 이 역에 도착하면, 저기 저쪽에 보이는 전광판에 기차번호랑 이름이 떠요.
저 전광판을 계속 확인해야되요'라고 친절히 설명해준 C군.
출발시각까지는 아직 30분 이상 남았는데, 자리잡고 앉은지 10여분도 채 안되어 내가 탈 기차가 도착했다는 빨간 글자가 전광판에 떴다.
내가 인사를 하고 일어나자, 둘도 함께 일어났다. 무거운 배낭을 맨 채로, 그 긴- (정말 길다;;)
플랫폼의 인파를 함께 헤치고, SL5칸을 찾아 내가 기차에 오르는 모습을 보고나서야 나에게
손을 흔들고는, 다시 인파 속으로 사라져갔다.
다시 생각해봐도 얼마나 고마웠는지. 혼자였더라도 어떻게든 기차를 탈 수는 있었겠지만
이미 여러번 그 혼잡스러운 기차타기를 경험한 그 두사람의 배려가 얼마나 힘이 됐는지 모른다.
우린 옆칸으로 가야해!
플랫폼은 사람들로 가득했고, 열차 객실내도... 아수라장이었다-_-; (적어도 나에겐 '아수라장'이었다)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탄 데다가, 나를 비롯해서 다들 무슨 짐들이 그렇게도 많은지.
주말도 아닌 평일 저녁에 어딜 그렇게들 가는건지ㅋㅋ
(인도 대도시의 기차역에 가면, 인도 인구가 10억이라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
내 침대 번호를 찾아 찾아, 그리고 그 아수라장속에서 upper bed로 어떻게 기어올라가나,
짧은 순간에도 이런저런 걱정들이 머릿속을 휘저어 놓는 통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아마 그 순간 내가 제 삼자가 되어 내 얼굴을 바라볼 수 있었다면, 입은 반쯤 벌리고 눈은 초점없이
흐려져 있었을 거다.ㅎㅎ
그런 내 얼굴을 알아봐서였을까, 어떤 아줌마가 내게 말을 건넸다.
첫마디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아무튼 내 주변의 바글거리던 사람들 중 나를 제외하고는 유일한
여행자로 보이는 아줌마였다. 다행히 나와 같은 칸 바로 아래 침대라서, 아줌마 덕에 무사히
윗칸의 침대로 올라갈 수 있었다. 아줌마가 왼쪽발은 어디에 올려놓고, 침대의 어느 부분을 손으로
잡고 올라가라는 식으로 자세하게 알려주신데다가 내 배낭도 들어올려 주셨기 때문에.
기차역에서 도착하고, 플랫폼을 지나, 내 침대를 찾고 자리를 잡기까지 30분이나 걸렸을까?
30분이 아니라 3시간쯤 용을 쓰며 산에 올라갔다 온 기분이었다.
멍청한 얼굴로 침대에 앉아서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이젠 출발하기만 기다리면 되겠네ㅡ 하는 안도의 한숨.
그러나 1분이 채 지나지 않아 난 다시 배낭을 아래로 던지고 내려와야했다.
아줌마 왈,
여긴 SL5가 아니라 SL6이란다! 우린 옆칸으로 가야해!
ㅠㅠ
나만 잘못탄게 아니라 마침 그 아줌마도 같은 실수를 하셨던 건 그나마,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ㅋㅋ
사람들
침낭을 펼쳐 쏙 들어가서는 머리끝까지 지퍼를 올리고 잠을 청했다.
지저분하고 덜컹거리는 그 기차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게 되지 않을까 심히 걱정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어느샌가 잠이 들었다. 신기하게도.
물론 여러 번 잠에서 깨어나긴 했지만.
침대는 불편했고 처음탄 기차라 내내 긴장이 풀리지 않았으며
몸살기운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데다가 목에서는 갈증이 느껴졌다.
생수를 사오지 않은 나는 간신히 차장 아저씨에게 생수 한모금을 빌려 종합감기약을 한알 꺼내삼키고는
다시 잠이 들었다.
(기차에서 생수를 판다길래 미리 사지 않았었다ㅠㅠ 대부분의 기차에서 생수파는데, 그 때는 생수
파는 아저씨를 아무리 기다려봐도...-_-;)
그렇게 기차에서의 첫날밤이 지나가고 아침이 밝아왔다.
목적지인 바라나시까지 바로 가는 차표를 구하지 못해서 바라나시에서 십여킬로미터 떨어진
무갈사라이역에서 내려 다른 기차로 갈아타야했다.
인도의 기차는 중간에 여러 곳에서 정차함에도 불구하고 안내 방송 따위가 없다.
그렇다고 기차역 플랫폼에 무슨 역인지 푯말이 세워져있는 것도 아니어서 창문에 고개를 내밀고 확인할 수도 없다. 힌디어로 써있어서 내가 읽을 수 없었던 건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래서, 사람들에게 다음 역이 어딘지, 내가 내려야할 역이 여기가 맞는지 수시로 물어봐야한다.ㅎ
(신기하게도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다 알고 있다!)
그건, 기차를 타면서 긴장을 놓치지 않을 수 없었던 여러가지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내려야할 타이밍을 놓칠까봐.
(물론 그걸 놓친다고 해도 큰일나는 건 아니었겠지만 말이다.
거기서 내려서 사람들에게 여러번 물어가며, 결국 바라나시로 갈 수 있었을거다. 좀 고생스럽긴해도.)
지난밤 내 좌석을 찾아 자리를 잡기까지 정신이 하나도 없는 통에,
12시간동안 '우리엄마'였던 스페인 아줌마를 빼고는,
내 아랫칸에 누가 탔는지, 내 맞은편 침대에 자고 있는 아줌마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나는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아는지 모르는지도 몰랐겠지, 아마도 ;;
다음날 아침,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에서 깨어나 침대를 접고 앉아 짜이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때 쯤, 나도 그들과 마주앉아 눈을 마주치고 미소를 주고받으면서...
'사람들'이 보였다.
전날 저녁, 침대 머리맡에 배낭을 와이어로 감아 자물쇠로 채우고,
누군가 내 운동화를 가져갈까봐 비닐봉지에 넣어 배낭에 넣어두고도 불안했던 나.
내가 얼굴도 모른채로 불안해했던 사람들이 누구였는지,
난 그제서야 그들의 얼굴을 보았다.
그들은 내가 사진을 찍어도 괜찮을지 묻자 흔쾌히 허락했고,
엄마와 딸의 피부색이 어째서 다른지 물어왔다.
아줌마의 실토에, 우린 다함께 웃었다.
^ ^
(지난밤 내가 잠들기 전, 아줌마는, '사람들에게 니가 내 딸이라고 얘기해놨으니 아무 걱정말고 푹 자라'고 이야기했었다. ㅎㅎ)
20080117 두 분 다 인상이 참 좋으시다ㅎㅎ _nikon coolpix p4
20080117 담요 휘감으신 아저씨 귀여우심 ㅎㅎ _nikon coolpix p4
20080117 처음으로 인도에 온 1980년 이후로 이번이 열다섯번째 인도여행이라던 스페인 아줌마. 처음 만났을 땐 스페인 발음 때문에 도통 영어를 하는지 스페인어를 하는건지 알아들을수가 없어서 진땀을 뺐다. 아줌마는 나보다 다섯시간을 더 가야하는 알라하바드까지 가신다고 했다. 아줌마가 있어서 든든했어요^^ 이름이라도 물어볼걸... _nikon coolpix p4
20080117 아줌마가 찍어준 사진. 뭔가 큰일해내고 난듯한 얼굴이다. 피곤하지만 그래도, 전날밤에 비하면 마음이 훨씬 편안했다. 심지어 기분이 좋았다. _nikon coolpix 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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