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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나시정션역.
간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였을까, 나는 플랫폼 사이를 왔다갔다 하며
역 밖으로 나가는 출구가 어딘지 한참이나 헤맸던것 같다.
꼴까따에서 처음 기차를 탈 때는 꽤 긴장했었지만 기차를 타고 달려오는 동안
잠을 푹 잘 수는 없었어도 어느 정도는 긴장이 누그러졌다.
그래서 기차역에서 원하는 숙소까지 별 탈없이(?) 어떻게 무사히 갈 것인가, 하는 것이
걱정스럽긴 했어도, 다른 한편으론 '어떻게든 되겠지'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피곤하고 어리버리해보였을 내 얼굴과 비교적(?) 깨끗한 내 커다란 배낭은,
광장에 즐비해있던 릭샤꾼들의 표적이었을 거다.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광장으로 나서기는 커녕
플랫폼에서부터, 그리고 그 플랫폼 사이를 잇는 통로 곳곳에서부터
어디까지 가느냐, 내가 좋은 숙소를 알고 있다,
라면서 내게 말을 걸어오는 릭샤꾼들이 많았다.

그런 식으로 내게 먼저 다가오는 사람보다는
내가 먼저 다가가서 흥정을 붙여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나는
수없이 내게 말을 걸어오던 그들을 무표정하게 지나쳤다.

광장으로 나가니, 사이클릭샤와 오토릭샤가 나란히 나란히 줄지어 서 있었다.
멍한 얼굴로 서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 또 이 사람 저 사람 와서 내게 말을 건넨다.
물론 릭샤왈라들.

어디까지 갑니까?
-싼까타 게스트하우스에 가고싶은데요.
거긴 길이 좁아요.
-아저씨 사이클릭샤 운전해요?
오토릭샨데.
-바라나시 골목길이 좁아서 오토릭샤는 고돌리아까지밖에 못간다고 하던데요,
 난 사이클릭샤 탈거에요!

이런 식의 대화를 수차례. 아니면 터무니 없는 가격을 부르던가.
역 안에 있는 안내데스크를 찾아가서
싼카타 게스트하우스에 가고 싶다고 했더니 직원아저씨가 관광객용 바라나시 지도 한장을 딱 펴더니
싼카타 게스트하우스가 여기쯤 있다며 표시를 해주고는,
여기까지 가려면 싸이클릭샤로는 얼마, 고돌리아까지 오토릭샤 타면 대략 얼마 정도가
적정 가격이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다시 광장으로 나섰는데 어떤 릭샤왈라가 '고돌리아까지 20'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을 불렀다.
게다가 오토릭샤.
정말? 정말? 이라고 몇번 되물어 확인을 받고는 그 사람을 따라 릭샤에 올랐다.
그런데 릭샤에 배낭을 싣고 앉아서 다시 한번, 정말로 20루피냐고 묻자, 이 놈이...
20루피가 아니고 20달러 라는 것이었다.
어찌나 어이가 없었던지 일단은 '허허'하고 웃음이 나왔다.

인도에서 20달러 - 배낭여행자가 이틀간 지낼수 있는 돈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 몇일을 지낼수도 ^^;)
순간 화가 치밀었다. 아니, 순간 화가 치밀었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온 몸의 피가 0.1초만에 머리 끝으로 쏠리는 것 같았다.
'딴 사람 찾아봐!'

버럭 소리를 내지르곤 바로 내렸다.
30여일 인도를 여행하면서 처음으로 화가 나서 언성을 높였던 때였다.
그런식으로 바가지 쓴 경험담이야 카페 게시판에서 수없이 읽었지만
실제로 당해보니, 아니 당할 뻔 해보니, 나를 완전 우습게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나빴다-_-;

그렇지 않아도 첫 기차여행이라 잠도 설치고 내 배낭은 무겁고 피곤해 죽겠는데
나를 봉으로 보는 릭샤왈라들 때문에 점점 더 피곤해졌다ㅠㅠ

그러던 중 딱 적정가격 - 안내 데스크의 아저씨가 말해 준 그 가격대로 가겠다는
인상좋은 아저씨를 만나게 됐다.
(다시 생각해보니 꼴까따에서 이용해본 교통수단은 택시와 트램 뿐이었으니,
그 때가 최초로 탄 사이클릭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 인상좋은 아저씨 등짝ㅋㅋ 사이클릭샤에 올라 달리는 중~ 그 피곤하고 어지러운 와중에 가방에서 디카를 꺼내 셔터를 눌렀다, 단 한 번. _Nikon coolpix p4



그런데 이 아저씨, 어쩐지 순순히 흥정이 된다 싶었더니만,
슬슬 딴 소리를 하기 시작하는 거다.
내가 알고 있는 어떤 게스트하우스가 있는데, very clean하고 very cheap하다, 이러면서...;;
싱글룸의 구체적인 가격까지 이야기하면서...
일단 가서 방을 본 다음에 마음에 안 들면 원래 니가 가려던 데로 가면 되지 않냐...
ㅠㅠ

(나중에 알고보니 이런식의 레파토리를 갖고 있는 릭샤왈라들이 많더군)

나는 또 한번 '허허'하고 웃어주고는,
그 숙소 주인한테 돈 얼마 받았냐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물었다.
그랬더니 아저씨도 별 대답없이 그저 '허허' 웃는다.

약간의 배신감을 느끼긴 했지만 그래도 그 아저씨가 괜찮은 사람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또 이미 역에서 여러 릭샤꾼들을 상대하느라 지친 나는
아저씨의 제안에 따르기로 했다.

결국 도착한 곳은 Elvis Guesthouse였던가, Elvis hotel이었던가...
아무래도 호텔 주인이 엘비스 프레슬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다.
사장으로 보이는 듯한 사람이 우릴 맞아주었는데...
엘비스 프레슬리를 연상케 하는ㅋㅋ 헤어스타일을 한, 꽤 젊고 핸섬한 남자였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고
그 숙소 주변은 한적하고 조용했다.
갠지스 강이 보이긴 했지만 좀 걸어서 나가야하는 위치였다.
주인을 따라 방을 둘러봤다. 솔직히 방은 꽤 괜찮았고 제시한 가격도 적당했다.
방이 조금 어둡다는 게 유일한 단점이었을까.

하지만 바라나시에서는 왠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곳에서 머물고 싶었다.
강가도 가깝고 좀 시끌시끌한 곳.
그래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더니 릭샤꾼 아저씨가 또 다른 숙소를 알고 있다면서
나 대신 내 배낭을 짊어지고 (내가 매겠다고 했더니 아저씨는 한사코 거절했다)
나를 다른 숙소로 데려갔다. 그러나 거기도 패스.
세번째로 데려간 다른 숙소, 또 패스.
그러는 사이 어느덧 시간은 정오가 가까워져 오고 있었고 나는 점점 더 피곤해져 표정이 굳어갔고
나도 모르게 아저씨에게 툴툴 거렸다.
나도, 아저씨도 별 말이 없었지만 나는 그 아저씨가 내게 무척 미안해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싼카타 게스트하우스가 아니면 비쉬누 게스트하우스에 가고싶다고 이야기했던걸 기억해낸 아저씨가
내게, 그제서야 비쉬누 게스트하우스로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내가 가려고 했던 싼카타도, 비쉬누도, 가이드북에 소개된,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꽤 유명한 숙소였다. 그런데 아저씨가 비쉬누 게스트하우스로 데려다주는데... 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꼬불꼬불한 좁은 골목들을 지나고, 그 골목 사이사이에 서성이는 소들을 지나치고
비쉬누 게스트하우스라는 곳에 데려다주었는데...

도미토리가 여행자들로 북적거린다고 소개된 비쉬누 게스트하우스.
하지만 게스트하우스 종업원은, 도미토리는 어디있냐고 묻는 나에게,
자물쇠로 잠긴 문을 가리키며, 저기가 도미토린데 8명으로 된 그룹이 머물고 있는데
문을 잠그고 외출중이라는, 뻔히 들여다보이는 거짓말을 해댔다.
게다가 숙소에서 방을 둘러보고 있는 나 이외에는 투숙객을 한 명도 볼 수가 없었다.

난 알 수 있었다.
그 곳의 간판이 비록 비쉬누 게스트하우스이긴 했지만
내가 가이드북에서 본 바로 그 비쉬누 게스트하우스는 아니라는 것을.
유명한 게스트 하우스와 이름이 똑같은 가짜들이 바라나시에 여럿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나는 더 이상 그 비쉬누 게스트 하우스를 박차고 나와
다른 방을 찾아 헤맬 에너지가 남아있질 않았다.
100루피 주기도 아까운 가짜 비쉬누 게스트하우스 옥탑방 싱글룸에서 일단 짐을 풀기로 하고
나는 OK했다.
살짝 초조해진 표정으로 1층 리셉션 앞에서 나를 기다리던 릭샤꾼 아저씨는
내가 체크인을 하고나자 내게 물었다.

'Are you happy?'

아... 사실 물론 나는 happy 하지 않았다.
이 곳이 내가 찾는 비쉬누 게스트하우스도 아니고,
게다가 형편없는 방에서 바라나시에서의 첫날밤을 보내게 됐으니 말이다.
그 짧았던 순간, 아저씨에게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무척 난감했지만
나는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아까부터 미안해서 나에게 말도 못 붙이던 아저씨에게
나는 전혀 happy하지 않다고, 방이 엉망진창이니 또 다른 곳을 둘러봐야겠다고,
20달러를 말하던 그 릭샤꾼에게 했듯이 언성을 높일수 없었다. (물론 그럴 기운도 없었다)
당신이 좋은 숙소를 알고 있다고 해서 따라다녔더니 결국 이게 뭐냐고 따질 수 없었다.

이제 방을 구했으니 happy 하다고 대답하자,
아저씨가 미소를 지으며 팔을 벌려 나를 포옹해주었고,
앞으로 즐겁게 여행하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숙소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아저씨에게 툴툴거렸던 것이 미안해졌다.
그렇게 숙소를 찾아 돌아다니는 사이 유난히 큰 내 배낭을 나 대신 짊어지고 돌아다닌 것도.

아저씨와 인사를 나눈 후
그 허름한 방으로 올라가 배낭을 던지고 (다시 생각해보아도 여행기간 중 최악의 방;;)
침대 위에 풀썩 앉았다.
앉자마자... 눈물이 고였다.
눈물이 고였다가 흘러내렸고
나는 어느새 그 작은 방에서 혼자 입을 벌리고 엉엉 거리며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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