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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까따에서의 첫 날 이후로는, 시간적 순서가 아닌, 사람들과의 에피소드 위주로 정리...)


다시 꼴까따에 가게 된다면,
가장 먼저, Paragon Hotel로 가서 도미토리의 빈 침대가 있는지 물어볼거다.


그곳에서 여러 여행자들과 처음 만났고 게다가 난 그 사람들이 좋았고,
앞으로 혼자서 여기저기 돌아다닐 용기와 자신감을 얻은 곳이니까.

그 곳이 첫번째 숙소라 그 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인도여행 기간 중 묵었던 숙소 중 가장 자유롭고 독특한 분위기의 숙소이기도 했다.
도미토리 앞에서 여행자들이 모여앉아 꽤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맥주를 마시거나 기타치고
노랠 불러도 심하게 제재를 하지 않았다. (조용한 숙소를 원하는 이들에겐 분명 짜증나는 점이겠지만)
꼴까따에만, 그것도 파라곤에서만  한달, 두달씩 혹은 그 이상으로 머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과,
그곳에 머무는 사람들끼리 쉽게 어울리고 잘 노는 것도 최고였다.

꼴까따를 떠난 이후에 '꼴까따하면 파라곤'이라는 말을 심심찮게 들었을 만큼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꽤 알려진 숙소였다. (물론 그 때는 몰랐다)
이름만 호텔이지, 여행자들에게 잘 알려진 이유가 시설이나 서비스 때문은 아니다.
내가 처음 47번 방을 봤을 때 놀랐던대로, 가격이 저렴한만큼 시설은 그저 그런 곳이다.
물론 가난한 배낭여행자들에게는 저렴한 가격이 대단히 큰 매력포인트이긴 하다 ^^;
(싱글룸이 140rs, 도미토리는 80rs이었다. 대략 40rs가 한화 1000원)

솔직히 말해 꼴까따에서 나는 거의 호텔에서 혹은 Sudder st.주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가이드북을 넘겨봐도, 또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굳이 나의 흥미를 끄는 볼거리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처음에는 막상 '혼자서' 돌아다닐 용기가 나질 않아서이기도 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080114 Paragon hotel 근처 _ Pentax me-super, Agfa vista 400



 재미있는 집단

이틀째 아침에 세수를 하다가 내가 먼저 말을 건넨 내 또래의 한국인 여행자 J.
그리고 J와 함께 머물고 있던 그녀의 일행들과 아침밥을 함께 되었다.
내가 같이 아침밥을 먹지않겠냐고 제안했을 때 '일행'들과 얘기해본다는 말에
난 그저 한두명의 일행이 있나보다, 라고 생각했었는데 알고보니 그의 일행은 무려 7명이나 되었다.
'집단'이라는 표현을 써도 될만큼의 규모인듯했다.

그 집단에 껴서, 누군가 사람들이 버글버글거리는 걸 봤다고 한 말에
우르르 몰려드러간 어느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대체로 야채커리나 치킨커리, 달걀커리랑, 짜파티나 밥을 함께 시켜먹었다.
테이블 두개를 붙여서 모여 앉은 우리들은 그 좁은 식당에서 꽤 시끌벅적했다.

주문한 음식들이 하나둘 나오자, 도대체 왜 사람들이 이 식당에 버글거렸을까, 하며
의아해했다. 양도 적고, 맛도 없었기 때문에-_-;
양이 적은 대신 맛있던가, 맛이 없으면 양이라도 많던가 해야지, 이건 뭐...;

결국 다들 '2차'로 노점의 중국음식점에서 아점을 먹었다. ㅋㅋ
차 한대 정도 지나갈수 있는 폭의 길 한편에 자그마한 노점 음식점이 있고,
그 반대편에는 긴 나무의자가 쭉 놓여져 있었다.
주문을 하고 나무의자에 자리잡고 앉아있다가 음식이 나오면
접시를 들고 그 의자에 주르르  앉아서 먹는 식이었다.
그 음식점 옆으로 샌드위치 가게, 짜이가게, 쥬스가게가 줄줄이 붙어 있어
그 길을 지날 때면 항상 한쪽편 의자에는 뭔가 먹고 있는 여행자들이 앉아있곤했다.

아무튼 그때 먹어본 chow chow 역시 ... 맛있었다! -_ㅠ
(그땐 이야기를 들었어도 잘 몰랐지만 나중에 깨닫게 된건, 꼴까따만큼
노점음식이 값싸고 맛난 곳이 잘 없다는 것. 아- 그립다, 꼴까따의 거리음식들!
하루에 숙박비까지 포함해서 5000원으로도 살 수 있는 곳이 그 곳이었다.)


그들과는 이후로 꼴까따를 떠나기 전까지 두세번 정도 밥을 같이 먹었고
간간히 이야기도 나누었는데, 그 '집단'의 구성이 참 재미있고 특이했다.

그 사람들이 처음부터 여행을 함께 한 것은 아니었다.
그 집단의 대부분은 중국을 거쳐 티벳에서 네팔로, 그리고 인도로 넘어 온 사람들이었는데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네팔에서 트렉킹하다가 만나기도 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자이살메르에서 낙타사파리하다가 만난 사이라고 했다.
그렇게 이어지고 이어져서... 헤어졌다가 꼴까따에서 다같이 만나기로 약속해서
지금 꼴까따에서 머물고 있단다.

지금 생각해도 한 명 한 명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기억이 다 날 만큼 개성이 뚜렷한 사람들이었는데
그 사람들이 서로 코드가 잘 맞아서 이렇게 큰 규모로 뭉쳐서 함께 다닌다는 것이 참 신기했다.
사실 여행 중에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건, 여행을 하는 이유 그 자체가 될 수도 있을만큼
큰 부분이지만, 그렇게 여럿이서 코드가 맞고 지속적으로 뭉치기는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서로의 여행 루트를 좌지우지할 만큼.

그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오래전부터 서로 알고 지내던 사람들처럼, 서로 그리도 편해보일수가 없었다.
일상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될 때보다, 역시 여행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더욱 쉽게 친해지고
편해지곤 하는 것 같다. (물론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났을 경우 ^^;)
게다가 여행을 떠나 온 사람들은 일단 '여유'가 있어서 그런지 마음이 더 열려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들의 공통점은 세 가지였다.

첫번째는, 그 8명 중 청일점인 C군을 제외하고는 다들 석달 이상 길게 여행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한두달 여행이라면 대개 '알차게' 계획을 짜서 오는 반면 (막상 다니다보면 그런거 다 소용없지만;;)
그 이상 여행이 길어지는 사람들은 별다른 계획이 없다. 인도를 시계방향으로 돈다, 6자를 그린다, 라는 식으로 대강의 루트만 정해서 오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그마저도 소용없어지고 인도 땅을 이리저리 휘젓게 되는 사람도 봤다ㅋㅋ)
그러다 보니 더더욱, 함께 있으면 즐겁고 마음이 맞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함께 다음 루트를 정해 같이 떠나기가 더 쉽다.

그리고, 그들 중 두 명을 빼고는 다들 각자 혼자 여행하던 사람들이기도 했다.
(역시 혼자 여행하는 편이,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기가 더 쉬운 것 같다.)

또 마지막 공통점은 다른 그룹들에 비해 평균연령이 높다는 것, 근데 다들 정말 동안!
평균연령이 이십대 후반 정도였고 최저연령 스물다섯, 가장 나이많은 Y언니가 서른여덟,
나이를 밝히기 전에는 많아봤짜 서른셋넷 정도로 봤었는데.
그들 중 대학생 두 명을 제외하고는, 다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떠나온 사람들이었다.
그래서일까, 지리한 일상을 박차고 행복해지러 온 그들이라 그런지 유독 다른 사람들보다
어려보이는것 같기도 했다.

그저 현실도피를 위해 무조건 자신의 일상을 내던지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 무모함이겠지만,
필연적으로 행복해지기 힘든 일에 매달리며 지쳐가면서도
막상 다른 길을 찾아 나설 용기조차 없는 사람들이 꽤 많지 않은가.
(물론 '다른 길'이 존재한다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들보다는 훨씬 낫지만.)

정말 현실적인 문제가 발목을 잡기도 하지만, 그건 어쩔수 없다는 핑계로 포장되기도 하는 것 같다.
행복해질수 있는 길이라는 건 단지 여행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 어떤 사회보편적으로 좋은 것, 옳은 것이라고 여겨지는 가치를 좇는게 아니라
정말 자신이 행복해질수 있는게 무엇인지,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능동적으로 찾아나설 수 있는 것, 찾은 후엔 행복해지려고 노력하는 것, 그런 것...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평가절하할 뜻은 없다. 일상에서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이야말로
훌쩍 떠났을 때 진정으로 그 기쁨을 깊이깊이 누릴수 있을테니까.


여행을 이제 막 시작한 (그들 대부분에 비하면 명함도 못내밀만큼 짧은 여행이었지만ㅋ)
나로서는, 그들이 부러웠다.
나도 그런 좋은 사람들을 만날수 있을까? 하는 의문,
그리고, 나도 그런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겠지, 하는 기대감을 동시에 가지게 하는 그들이었다.

이미 서로 잘 알고 있고 친해져 있는 그들 사이에 혼자인 내가 먼저 다가가기는 쉽지 않았다.
그들이 고의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배척하거나 한 것은 전혀 아니었다. 유쾌하고 좋은 사람들이었다.
헌데 아무래도 인원수가 많다보니, 다른 여행자들에게는 알게 모르게 테두리를 둘러놓고 있는듯 느껴졌다.
그런 점이 좀 아쉽기도 했고, 나는 앞으로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 아쉬운 점은 아쉬운 것이고ㅡ

그들 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을만한 고마운 사람들이 몇 있다.

내가 먼저 인사하고 말을 건넸던 J -
툭툭 던지는듯한 시원시원한 말투에서부터 본능적으로 동질감을 느꼈다.ㅎㅎ
알고보니 공대나왔더라는... (내 그럴줄알았다)

밥먹었냐고, 밥 안먹었으면 같이 먹으러가자고, 자잘한 것들(이지만 무척 고마웠던)을 챙겨주었던
E언니-
그런 자잘한 마음들이 고마워서, 태국여행을 마지막으로 몇달간의 여행을 마무리하러
언니가 방콕으로 떠나던 날, 나는 외출했다가 언니 떠나는 시간에 맞춰 돌아와 그 언닐 배웅했다.

꼴까따를 떠나던 날, 기차역까지 나와 함께 했던 C군과 M양-
여행하다가 맺어진 귀여운 커플, 고마웠다.

여행을 막 시작한 나의 이런저런 고민을 들어주고 조언을 해주었던 Y언니, 아니 E언니-
친구들은 대부분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는 때에 (언니는 서른여덟살)
노후에 대한 대책이랄만한 것은 없지만
지금 이 순간, 여행을 하며 좋은 사람들을 만나가는 지금이 너무나 행복하기에,
설사 늙어서 고생하게되더라도, 그때의 고생은 지금의 행복함을 기억하며
기꺼이 감수해낼수 있을 것 같다던 언니.
정말 행복해보였다.
멋진 걸 보여주겠다며 이야기하다말고 방으로 들어가 카메라를 꺼내와서
티벳으로 가는 길에 찍은 꿈같은 사진을 보여줬던 그 언니가.

이 E언니와의 잊지못할 에피소드가 한 가지 있다.

처음 만나 인사를 하고 통성명을 했을 때 언니는 자신의 이름을 영자라고 말했다.
어느 날엔가 숙소에서 언니의 뒷모습을 보고 뭔가 말하려고 '영자언니!'하고 불렀는데
뒤돌아 나를 보는 언니의.... 당황한 표정이란 ㅋㅋ
영자라는 이름이 사실 촌스러운 이름인데 내가 언니 이름을 크게 부른 탓에 언니가 당황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보니 언니가 실토한 바, 자신의 이름은 영자가 아니라 **라고...ㅋㅋ
오랜 여행길에 만난 많은 사람들에게 실명을 그대로 말하기가 꺼려져서
춘자, 영자 등으로 가짜 이름을 말했었는데, 그동안 그렇게 나처럼 언니의 가짜이름을 불러 준 사람이
거의 없었던 모양이다.
언닌 평소대로 가짜 이름인 영자를 나에게 말해준 건데 진짜 이름을 부를 거라곤 생각못했단다.
(사실 이름부를 일이 딱히 없긴하다 ^^;)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날의 웃긴 에피소드 때문에 언니도 내가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4월까지는 여행한다고 했으니 아직 인도 땅 어디쯤에서 유쾌한 그 일행들과 함께 지내고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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