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ordinary scene

3월 ER

갈매나무 2011. 2. 3. 14:47

작년 2월, 첫 출근을 며칠 앞두고 1년간의 인턴 스케쥴표가 공개되었다.
인턴 근무는 1개월에 1개 과에서 근무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첫 근무는 2월 중순에 시작하므로 40여일간 근무하는것이 보통이다.
그 수많은 과들 중에서 응급실, 신경외과만 아니면 다 괜찮다고 간절히 바랬건만
스케쥴표를 확인하고도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어 그 엑셀파일을 몇번이나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확인했었는지 모른다.

응급의학과!

인턴 첫 달의 응급실은 더더욱 힘들기 때문에 가능하면 현역 남자의사들을
배치한다고 한다는 이야기는 진정 헛소문이었나...

어쨌든, 2010년 2월 18일, 난 부천성모병원 응급의학과로 첫 출근을 했었다.
CMC에 속해있는 수도권의 6개병원 가운데 유일하게(아마도?) 응급의학과 전공의가 없는 곳.
그야말로 생초짜 의사들인 인턴들이 환자를 본다는 그 곳!

그런 무시무시한(?) 곳에서 나의 첫 의사생활이 시작되었다.

뭐 그 곳에서의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을 여기에 공개하긴 낯간지럽기 때문에ㅋㅋ 생략하기로 하고,

이제 인턴 생활이 보름 남은 지금에서야 응급실 근무가 몸은 힘들어도 제일 기억에 남는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렇게 힘들었던 응급실 첫 달 근무 동안 병원을 뛰쳐나가지 않을 수 있었던,
그나마 그 때를 떠올렸을 때 빙긋이 웃음지을 수 있는 순간들이 내게 남아있는 이유는
그 40여일간 함께 고생했던 좋은 사람들 덕분이다.

서로 힘든일이 있을 때 망설임없이(?) 도와주었고
크고 작은 일들을 서로 챙겨주었고
나이트 근무 끝나고 아침 8시에 함께 먹는 모닝삼겹살, 소주도 사랑스러웠다.

3월 이후 응급실 인턴들 사이에는 크고 작은 불화설이 끊이지 않아서인지
응급실 이후에 서먹서먹해진 이들도 적지 않았지만
우린 예외였다.

부천에서의 6개월 근무가 끝나고 우리 다섯명 중 둘은 여의도에서, 셋은 의정부에서 근무하게되었다.
(어쩜 이렇게... 뿔뿔이 흩어지지도 않았다.)

더 늦기 전에 만나야 한다며, 맞추기 어려운 스케줄을 억지로 맞춰 지난 주말 
의정부에서 반년만에 다섯명 모두 모였다.
사실 다섯명 모두 모인건 6월 이후 처음.

지난 1년간 (3월 빼고-_-) 술자리에서 주량에 훨씬 미치지 못할 만큼만 마셨는데
그 날은 그럴 수가 없었다. ㅋㅋ
정신을 잃을 정도로 마셔도 챙겨줄거라 믿는 이들이 있었으므로ㅋㅋ
그리고 그 다음날도 오프였으므로ㅋㅋㅋ

결국 후회없이 장렬히 전사했다는-_-
아름다운 이야기.

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사회로 나가면 좋은 친구들을 만나긴 정말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신기하게도 인턴 1년을 돌이켜보니 내게 남은 몇몇 좋은 사람들.
그 중 넷, 작년 2월, 3월 응급실에서 눈물을 닦아주고 등을 두드려주던 그 넷이 내게 남았다.
내과, 외과, 정형외과에서 1년차로 많이 힘들겠지만, 다들 좋은 의사가 될거라 믿는다 :)




7월 나이트 근무 중 잠시 환자가 뜸한 틈을 타 새벽에 찍은 사진 :)






 

'ordinary scene'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당직실에서  (4) 2011.05.18
아직  (8) 2011.04.19
아직도 난  (2) 2010.12.19
시작합니다  (12) 2010.02.08
시험이 끝나고  (12) 2010.01.13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