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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두 달 전의 일이다. 진찰 대상자 명단의 사번을 보니 그는 이 자동차 공장에서 일한지 아직 만 3년이 되지 않았다. 명단에 나이는 나와있지 않았지만 재작년에 대학에 입학한 내 막내동생이 떠오를 만큼 앳된 얼굴이었다. 입사 이후 지금까지, 오른팔에 힘을 주고 어깨를 돌리며 자동차 도어에 웨자를 끼우는 작업만 해왔는데 1, 일하는 동안 팔과 어깨가 너무 아프다고 했다. 신체진찰을 해보니 관절이나 뼈의 문제, 근육의 심각한 손상보다는 반복작업에서 비롯된 근육통일 가능성이 높았다.
"뭉쳐있는 근육을 풀어주려면 자주 스트레칭을 하셔야 돼요. 어깨에 무리가 가지 않는 작업을 하는게 가장 좋겠지만 이 일을 계속 하면서 통증을 예방하려면 장기적으로는 근력 운동을 하셔야합니다."
바로 내 앞에 앉아있는 그의 얼굴에 희미하게 웃음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는 분명 웃었지만, 그건 실망감 후에 따르는 가벼운 냉소였다.
"회사 입사하고 나서 처음으로 의사 상담이 있다길래 왔는데... 오면 뭔가 '대책'을 말해주실 줄 알았어요."
대책… 나는 그가 입사 이래 회사 안에서 처음으로 만난 의사였다. 그는 내가 어떤 대책을 내놓길 기대하며 진료실에 온 걸까. 난 막내동생 같은 그가 그런 이야기를 할 줄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일까. 나는 그 순간 정말 눈앞이 깜깜해졌고, 어떤 말을 해야 할지도 퍼뜩 떠오르지 않았다.
"웨자를 1시간에 60개 정도 끼우는데, 이걸 하루에 10시간동안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자동차 공장을 둘러본 적은 있지만, 직접 일을 해본 적은 없었다. 간절함이 배어나오는 그의 ‘생각해보라’는 말에, 그가 내 대답을 기다리던 찰나, 10시간동안 오른팔을 힘주어 휘두르며 일하는 내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어떨까. 그렇게 매일 10시간 일하는 동안 과연 그 팔이 내 팔일지...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를 왜 하는지, 해봤자 바뀌는게 없다고 느낀다고 하더라도 왜 계속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지를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의사인 내가 지금 당장 해줄 수 있는 것이 얼마만큼인지에 대해서도. 그 상황에서 딱 그만큼이 최선이었다고 생각하면서도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는 것 같아, 나는 이야기하는 동안 괴로움을 느꼈고, 그가 진료실을 떠난 후에도 마음이 불편했다.
그가 고등학교를 마치고, 혹은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누구나 알만한 큰 기업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 어땠을까. 변변한 직장 구하기 어려운 시대에 취업이 되었으니 안도했을 것이고, 사회인이 되어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간다는 것에 설레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하루 10시간동안 바쁘게 일하느라 팔이나 어깨가 너무너무 아프고 힘들 수도 있다는 것을 예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트레칭과 근력운동을 해야한다는 이야기에 실망감이 역력하던 그의 표정은, 처음 입사할 땐 이럴 줄 몰랐다는 그런 표정 같기도 했다. 일을 한다는 건 그에게 어떤 의미일까. 어디선가 제 몫을 다하며 일하고 돈을 번다는 것이 이렇게 아프고 힘든 대가를 치루어야하는 것일까. 어지간해서는 10년, 20년 후에도 아마 그는 이 공장에서 일하고 있을텐데, 지금은 일하는 시간에만 아프다는 그의 팔이 그때에도 여전히 그만큼만 아플까. 일하는 시간에는 스트레칭할 여유도 없이 바쁘다는데 그의 팔이 멀쩡할 수 있을까, 그는 행복할까. 짧은 시간에 오만 생각이 머리를 휘저었다.
그 날 뿐만 아니라 같은 진료실에서 근골격계 진찰을 하는 동안 비슷했다. 직접적으로 ‘대책’을 내놓으라고 언급한 사람은 더 없었지만(이미 체념한 탓일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게 전부인가’하는 생각에 기운이 빠졌다. 내가 전공의로 일하고 있는 병원 소속이 아니라 연구소 회원으로 그곳에 갔다면 그에게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것, 이미 알고 있다. 그렇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 내가, 우리가 어떻게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연구소 2 동지들과 함께 찾아보고 싶다. (아니면, 찾고 있을 때 어디 가지말고 옆에 있어야겠다.^^)
또한,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던 그 얼굴을, 앞으로도 만나게 될 수많은 어떤 얼굴들을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기를. 뭐든 곧잘 잊어버리는 나지만, 그렇게 할 수 있기를.
(일터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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