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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dinary scene

2012년 새해 첫 날

갈매나무 2012. 1. 1. 20:12
작년 12월 9일, 구로역 부근의 모처에서 한노보연 송년회에 참석했다.
2011년 통틀어 첫번째로 참석한 송년회였고, 한노보연 후원회원이 되고 난 후 거의 첫번째로 참석한 모임이기도 해서 그런지 송년회에 참석하면서 어떤 '요구'를 받게 될거라고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상태에서 (둔하다-_-) 모임에 나타났다. 
건물의 지하1층에 있는 허름한 김치찌개집에 신발을 벗고 들어가자,
'이걸 써야 밥을 준다'며 작은 색지 조각을 건네받았다.
새해에 얻고 싶은 것, 버리고 싶은 것을 써야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터라 나름 테이블에 앉아 꽤 한참을 고민해야했다.
사실 좀 진지한 모드로 나가야하나, 아니면 그냥 가볍게 써도 될지, 분위기 파악도 안되는 상태라.
결국 이렇게 썼다.

얻고 싶은 것 : 2년차, 한노보연 정회원, 남자친구
버리고 싶은 것 : 주말 아침잠, 몸무게  

2년차라고 쓴 것은, 당연히 의국을 뛰쳐나가지 않는 이상 당연히 2년차가 되는 것은 맞는데 
그냥 그렇게 필연적으로 주어지는 2년차라는 위치가 아니라, 
스스로 좀 더 고민하고 준비하여 2년차가 되겠다는 것이다.
학문적으로도 그렇고 (몸이 달아서 1년차 둘이서 고군분투 자체 스터디 중 ㅠㅠ) 
누군가에게 senior로서 역할을 해본지가 꽤 오래된터라 새로 들어올 1년차 선생님에게 어떤 senior가 될지말이다.  
그리고 윗년차 선생님들이나 스탭선생님들께도 자극 또는 영감을 줄 수 있는 그런 2년차가 되고 싶다는 것. 
물론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스스로 노력하다 보면 사실 그런것들은 자연히 따라올거라고 생각한다.

한노보연 후원회원이 된 것은 자의반, 타의반.
하지만, 주변인의 조언이나 권유가 없었더라도, 
시기가 조금 늦춰졌을지언정 난 결국 한노보연의 일원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반년동안은 주치의 하느라 다른 모임에 나가는 것에 대해선 단념하고 있었는데 
이제서라도 그 일원이 되어 기쁘다.
아직 총회에서의 인준과정이 남아있지만 마음만은 정회원이라는.ㅋㅋ 
병원 이외의 공간에서, 고민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나의 전문분야(아직은 택도 없지만-_-)를 살려 실천할 수 있는 조직을 만나 정말 기쁘고 감사하다. 
아직은 꼬꼬마 레지던트에 불과하지만 언젠가는 한 몫 해낼 수 있는 회원이 될 수 있기를.
이런 마음 앞으로도 변함없기를. 

남자친구는... 사실 당연히 써야될것 같아 썼지만 
줄줄이 썼다가 지웠다. 블로그에 쓰기에는 지나치게 개인적인 이야기라서.
사실상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그렇지 않은데, 내겐 제일 어려운 문제다. 
내 마음이 굳게 닫혀있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물론, 눈도 높고ㅋㅋ) 

버리고 싶은 것은 주말 아침잠. 
일주일에 22시간만이 오롯이 내 시간으로 허락되었던 주치의 생활이 끝난 9월초이후로는 
별일 없으면 주 5일 근무가 유지되었다. 갑자기 1주일에 이틀이 주어지게 됐는데 
그 주말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해 난 이렇다할 계획이 없었다.
물론 한달에 한번은 토요일아침부터 오후까지 토요세미나가 있었고  
학회도 있었고 의국에서 산행도 갔으며
두세번정도 주말에 있는 외부 컨퍼런스에 자발적으로 참석했다.
그래서인지 반년동안 당직실에서의 불편한 잠, 모자랐던 잠에 대해 한이 맺히기라도 한 사람처럼 
토요일, 일요일 내내 나는 잠을 잤다. 
물론 평일저녁에도 별일 없이 일찍 퇴근하면 내 시간이긴 하지만 
좀 더 유용하고 생산적인 일에 이용할 수 있는 주말을 너무 잠자는데 쓰지 않았나, 싶다. 
물론 적절한 휴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지만. 
그래도 내년에는 주말 아침잠을 좀 버리고 싶다.
(사실 내년에 병동 백을 보게 되면 주말 아침잠은 최소 6개월이상 없다.)

몸무게도 당연히 버려야한다.
대체로 인턴하고, 주치의하면 필연적으로 살이 찐다는 것에 대해 동의하는 편이지만
이대론 안된다-_- 2010년 초, 응급실 인턴하면서 홀쭉해졌던 이후 지속적으로 몸무게가 늘어왔다. 조금씩조금씩.
역시 살빼는 건 어려운데 찌는건 한순간이라는.
좀 더 걷고, 병원에서 계단도 자주 이용해야겠다.


사실 2010년의 12월 31일도, 2012년 1월1일도 그저 같은 시간의 연장선일 뿐이다.
그걸 굳이 365일씩 나누어놓은 것은 어쩌면 짧을 수도, 어쩌면 길 수도 있는 인생을 살면서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도록 누군가 만들어놓은 장치인지도 모르겠다. 한 해를 마감하면서, 새로운 해를 시작하면서, 뭐든 새로워지기 위한 다짐을 하게 되도록 말이다. 

이렇게 해를 넘기며 누구나 그렇듯, 한 살 더 먹었다.

한살 더 먹는다는 것이 기뻤던 시절이 분명히 있었는데.
나이먹는게 좋은것만은 아니라는걸 알게 된건 고등학교 시절이었던 것 같다. 
나이만큼 잃는 게 있다는걸 알았으니까.

여전히 나이들면서 얻는 것도 있고 잃는 것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벌써 이 나이가 되었다는 게 별로 실감이 나지 않는다. 
나이를 잊고, 그저 시간이 흐르는만큼 지혜로워질 수 있기를.
또 한편으로는, 영원히 철들지 않았으면. 

















크리스마스나 12월31일같은 날엔 어딜가나 사람들로 붐비기 마련이라 집 밖에 나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는 선생님이 주말 지리산 종주하며 찍은 지리산 사진을 트위터에서 올리셨는데..
정말 멋졌다. 은은한 안개 속에 끝없이 펼쳐진 지리산 굽이굽이가 무척 아름답더라.
올해 마지막날엔 나도 어딘가 뜻깊은 장소에서 새해를 맞이하고싶다는 생각, 처음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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