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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밖으로 안나푸르나 1(8,091m), 안나푸르나 남봉(7,219m)이 잘 보였고

주인 타라가 오랜 친구처럼 정다웠으며

무엇보다도 사람들과 둘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던 따뜻한 난로가 있어 좋았던 고레파니(2,820m)의 롯지

히말라야 트레킹 3일째 아침, 나는 난롯가에 앉아 삶은 감자와 밀크티를 먹고 있었다

여행지에서 반드시 한번쯤 물어보거나 듣게 되는 질문은, 당연스럽게도 얼마나 많은 나라에 가봤느냐는 거다

그때도 옆에 앉아 있던 오스트리아 친구가 내게 불쑥 질문을 던졌다

감자를 우물거리면서 그 동안 여행했던 곳을 하나씩 차례대로 떠올리며 이야기하다가, 나는 흠칫 놀랐다

여행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리 많은 곳에 가보지 못했다고 생각해왔는데, 꼽아보니 꽤 여러 곳이었다.


이번 네팔 여행은 내게 여러가지 이유에서 특별한데, 그 중 한가지는 처음으로 착한 여행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제법 여행경험치가 쌓였음에도 불구하고, 왜 난 이제서야 그런 고민을 하게된 것일까

지금까지는 호기심과 즐거움을 충족시키는데 급급(?)했다면, 이젠 어느 곳으로 떠나더라도 그 곳과 그 사람들을 내 나름의 방식으로 느긋하게 경험할 여유와 배짱이 생겼나보다.


사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처음부터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시작은, 현지에서 가이드를 어떻게 구해야할지 찾아본 것이 계기가 되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비행기표 외에는 일체 예약을 하지 않고 떠나는 편인데

산을 오르는 일정이 하이라이트인 여행은 처음이라서 약간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함께 산에 오를 가이드나 포터를 현지에서 어떻게 구할지, 어느 에이젼시가 좀 믿을만하고 비용은 얼마나 드는지 등의 

정보를 찾아봤다. 그러던 중, 소속 가이드와 포터들의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어느 에이젼시를 알게 되었다

쓰리시스터즈 어드벤쳐 트레킹(3 Sisters Adventure Trekking)’. 한국말로는 삼자매 모험트레킹정도?ㅎㅎ 

홈페이지(http://www.3sistersadventuretrek.com)를 찾아 들어가보니

네팔 여성들을 폭력으로부터 보호하고, 트레킹가이드로서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활동을 하고 있는 

EWN(Empowering Women of Nepal)이라는 NGO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에이젼시였다

(NGO와 에이젼시의 공통 설립자가 실제로 친자매인 세 여성이었다.) 


가이드나 포터들이 일반적으로 남성인 것으로 알고 있던 사실에 비해, 여성 가이드를 구할 수 있다는 것

그 뿐만 아니라 그런 좋은 취지의 에이젼시가 있다는 걸 알게 되어 기뻤다

떠나기 이틀 전쯤 비용과 루트 등에 대한 문의메일을 보낸 후 답변을 받았다

미리 알아본 시세에 비해 가이드 비용이 30% 정도 비싸고, 운반을 맡길 수 있는 배낭 무게에도 제한이 있었다

하지만, 그 이윤이 여성 트레킹 가이드를 양성하는데 쓰이고, 그렇게 해서 내가 그들의 자립을 도울 수 있다니

내가 그곳을 여행함으로써 행복해질 수 있고

나의 여행으로 인해 그곳의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도 행복해질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의미있는 여행이 또 있을까.  더 이상 다른 곳을 알아볼 필요가 없었다

(물론, 있는 돈 없는 돈 긁어모아 떠났던 학생시절이라면 1달러라도 더 아껴야하니, 간단히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월급 받으며 일하고 있으니 그 정도쯤이야^^) 

또한, 쓰리시스터즈에서는 아동노동(Child labor)으로부터 가난한 여자 어린이들을 구제하고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활동도 하고 있다는 것을 후에 알게 되었다.




푼힐(Poon hill)에서. 뒤쪽으로(왼쪽부터) Annapurna I(8,091m), Annapurna south(7,219m), Hiunchuli(6,441m), Machapuchare(6,993m)가 보인다. 이들 틈에서 3,210m는 그저 ‘언덕(hill)’일 뿐.


 

트레킹 4일째 새벽

푼힐(3,210m)에서 바라본 히말라야의 고봉들은 조금만 걸어가면 닿을 수 있을 듯이 가까웠고

아름답다는 말로는 모자랄 만큼 높고 깊었다

고레파니를 출발해 간드룩으로 가는 길에는 꽤 오랫동안 끝없이 이어진 하얀 봉우리들이 보였고

어디쯤에선가는 바로 눈 앞에 커다란 구름들이 있었다

나는 그 순간들이 아까워서 봉우리들이 잘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자꾸만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서서 바라보곤 했다

함께 걸었던 가이드 두르가는 그런 내가 재미있다며 여러 번이나 깔깔거리며 웃었더랬다

나 말고도 수없이 많은 여행자들이 다녀가는 이 곳

30, 40년 후쯤에도 다시 왔을 때 변함없이 아름다운 히말라야를 보고 싶다면내가 할 수 있는게 뭘까

생각해낸 답은 간단했다. (어쩌면 아주 개인적인 바램에서 비롯된 것이긴 했지만 말이다.ㅋㅋ

한국에서 가져간 물건으로부터 나온 쓰레기는 가능한 되가져 오려고 노력했다

다 쓴 샴푸나 샘플 화장품 용기는 모두 가져왔고플라스틱 포장이나 쇼핑백도 챙겨왔다

애초에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다면 가장 좋겠지만

그래도 네팔보다는 우리나라의 쓰레기 재활용 시스템이 좀 더 나을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새로운 약속 한가지를 정했다

구체적인 조건에 대해서는 좀 더 고민을 해봐야겠지만

앞으로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는 그 곳의 NGO 중 한 곳에 기부금을 내기로 마음먹었다

목적지를 정하고 준비하는 동안 그 나라의 문화나 경제적 여건사회적 문제 등에 대해 알게 되기 마련이다

그러면 어떤 방면에 도움을 주는게 좋을지 자연스럽게 결정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이번 여행을 계기로 나는 여행자에서 착한 여행자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것이다. :D 



5일간 함께 트레킹한 가이드 두르가(Durga)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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