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이 싫다. 바지도 젖고 신발도 잘 젖는데다가 우산을 들고 다녀야하는 한 손이 자유롭지 못하니까. 최근 들어 비오는 날이 조금 좋아진 유일한 한가지는, 내 방 창문에 타닥타닥 빗방울 튀는 소리를 들으며 따뜻한 커피를 마실수 있는 지금같은 오후의 시간. 어제 오후,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 오후, 나는 갑자기 우울해졌었다. 핸드폰을 고치고 서점에 들렀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 충무 교차로 앞 횡단보도 앞에 서서 멍하니 흐린 하늘을 바라보았다. 소금기가 스민 습한 공기가 코끝에 느껴진다. 문득 2008년 6월 내가 이 곳에 서 있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 참으로 오랜만에. 2008년 6월에 내가 이 곳에 서 있을 거라고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초점은 흐리고 표정이 없었다. 고등학교를 마칠 ..
가이드북을 읽으며 루트를 그려보거나, 인터넷으로 산 침낭에 쏙 들어가 누워볼 때면 여행 떠나기 전 특유의 흥분과 설레임으로 마음이 한껏 부풀어올랐다. 그러다가도 인도여행 카페 게시판에서 혼자 여행은 말리고 싶다는 글을 발견하기라도 하면 부푼 마음이 순식간에 뻥! 터져버리고 눈앞이 캄캄해지곤했다. 출발 전 몇일간, 하루에도 여러번씩 그런 싸인곡선을 오르내렸다. 이윽고 하루 전날이 되어, 엄마와 함께 (인도에서 자동로밍이 되는 기종의) 새 핸드폰을 사러 돌아다니고, 동생 방 가득히 물건들을 늘어놓고 짐을 싸면서 그런 기복은 점차 희미해졌다. 그날 밤, 아빠가 자꾸만 방문을 열어보시면서 일찍 자라고 재촉하셨지만 난 잘 수가 없었다. 배낭을 싸다보니 부족한 것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여지없이 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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